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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소설계의 거장 O' Henry 소개
작성자 신상민 등록일 20.07.23 조회수 21

단편 소설계의 거장, O. Henry

O. Henry, 1862911~ 191065

본명은 윌리엄 시드니 포터 (William Sydney Porter). 오 헨리라는 필명은 여러 가지 일화가 전해지는데, 그가 기르던 고양이가 오 헨리라는 이름을 가져서 헨리라고 부르면 듣는 척도 안 하다가 오 헨리라고 불러야지 관심을 가졌다는 이야기 및 교도소 복역 당시 교도소의 간수인 오린 헨리 이름을 따왔다는 설, 또 그가 복역했던 오하이오 주 연방 교도관(Ohio penitentiary)의 첫 자음 끝 철자의 조합이라는 설 등 다양하다. 그중에서도 가장 유력한 설이 교도관장 오린 헨리 이름을 딴 것. 교도소에서부터 오 헨리란 필명으로 꾸준히 단편소설을 발표하여 출판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다지 부유하지 못한 집안에서 태어나 고교를 졸업하고 약사 자격증을 따 약사로 일했다. 하지만 이 직업은 경제적인 도움이 되지못하여 여러 일을 하며 살아갔는데 지방악단에서 만돌린이나 기타 연주도 하고 지역 신문기자로도 일했다가 28살 때 17살난 아내 아솔을 만나 결혼한다. 11녀를 얻었으나 아들 제레미는 일찍 죽고 딸인 마가렛은 어른이 될 때까지 살았으나 그녀도 192738살 나이로 병들어 일찍 세상을 떠나고 만다. (다행히 마가렛의 후손들은 지금도 미국에서 살고 있다.)

1893년에 롤링 스톤이란 주간지를 내서 데뷔했지만 그다지 인정을 받지 못했다. 그나마 장인의 도움으로 즉 빽으로 우체국 사무원으로 일했고 이후에 은행원으로 일하던 도중, 은행 자금을 횡령하여 1898년부터 3년 동안 복역하기도 했다. 원래는 5년형이 선고되었다가 모범수로 가석방 되었다고. 처음에는 그는 횡령사실을 부정하면서 1896년 멕시코를 거쳐 온두라스로 달아나 1년 동안 잠적했다가 아내가 병으로 죽어간다는 소식을 듣고 자수해 아내인 아솔이 눈을 감는 걸 곁에서 지켜본 다음에 재판을 받았는데 약사 자격증이 있기에 교도소 의무실에서 약사로 일하면서 복역하게 되었다.[1] 그는 이 교도소 생활이 작품에 큰 영향을 주었다고 회고했다.

석방된 다음 해인 1902년부터 본격적인 작가로 활동하며 모두 381편의 단편소설을 썼고 생전에 10권 남짓한 단편집을 출간했다. 딸 마가렛과 살아가다가 1907년 재혼하였고 이 무렵 연극 각본도 썼으나 그다지 성공하지 못했다. 다만 그의 단편인 <되찾은 양심>을 다른 이가 연출 및 각본을 맡아서 브로드웨이 연극 <지미 밸런타인>(주인공의 이름)으로 1909년에 만들어 대박을 거둔 바 있다. O. Henry's Full House라는 영화가 1952년 개봉되기도 했다.

작품 성향은 미국 서민들의 애환이 섞인 생활상을 잘 반영하고 있으며, 유머와 따듯하고 훈훈한 이야기가 많다. 또 갓 근대 도시가 급성장하는 20세기 초반 미국의 모습도 엿볼 수 있다. 오 헨리의 시선을 잘 보여주는 일화가 있는데, 워드 맥캘리스터라는 사람이 "뉴욕 시에 알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은 모두 400명 밖에 되지 않는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 말을 들은 오 헨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400명이 아니라, 400만 명은 된다."

참고로 이 당시의 뉴욕시 인구가 400만 명이었다. 오 헨리는 나중에 자신의 작품집 하나에 <400만명>이라는 제목을 붙인다.

그의 소설은 트위스트 엔딩이라고 불리는 구성을 띄우며 반전이 들어가는 때도 잦다. 그러나 문학사적으로는 그리 비중 있는 작가로 여겨지지는 않는다고 한다.

다만 오 헨리의 문학사적(특히 미국 문학사적) 비중이 낮다는 이런 평가는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오 헨리의 문학사적 비중을 부당하게 깎아내린 편향적 평가의 결과이거나, '특정한 측면에서' 오 헨리의 문학사적 영향력이 제한적이라는 평가에서 전후맥락을 다 떼어내고 '문학사적 비중이 낮다'는 부분만 인용해 온 결과물일 가능성이 높아보인다[2]. 무엇보다도 미국 문학사에서 오 헨리가 빠져버리면 미국 현대문학의 태동기와 황금기 사이를 연결해주는 <성장기> 시대의 미국 문학을 설명할 방법이 없다.

미국 문학의 세대와 오 헨리의 위상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면...

미국 문학의 0세대, 현대문학이라기보다는 근대문학의 마지막 세대에 해당하는 작가로 에드가 엘런 포와 나다니엘 호손을 꼽을 수 있다. 1800년대 출생으로 활동 시기 역시 19세기 초중반.

미국 문학의 1세대로써 본격적인 미국 현대 문학의 태동기로 여겨지는 세대의 작가로 흔히 미국 문학의 아빠라 불리는 마크 트웨인과 흔히 그렇게 불리지는 않지만 미국 문학의 엄마라는 이름에 부끄럽지 않은 영향력을 남긴 루이자 메이 올컷을 꼽을 수 있다. 1830년대 출생으로 주 활동시기는 19세기 후반.

미국 문학의 2세대를 대표하는 작가가 바로 오 헨리와 잭 런던, 진 웹스터 등이다. 1860~70년대 출생으로 주 활동시기는 19세기 말~20세기 초.

이 뒤를 잇는 세대가 바로 길 잃은 세대, 또는 잃어버린 세대라 불리는 미국 문학의 3세대 작가들이다. 미국 현대문학의 황금기를 이끌었다고 여겨지는 이 세대의 작가로는 어니스트 헤밍웨이,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 윌리엄 포크너 등이 대표적이며 로스터 제너레이션의 전통에서는 약간 벗어나 있지만 펄 벅 역시 이 세대에 속한다. 1890년대 출생으로 주 활동시기는 20세기 초중반.

이 기준에서 보면 오 헨리는 미국 문학의 '태동기인 1세대''황금기인 3세대' 사이를 연결하는 '성장기인 2세대'를 대표하는 작가 중 한 사람이며, 오 헨리 및 2세대 작가들의 작품세계에도 이러한 특징은 강하게 드러난다. 미국이라는 국가가 아직 확고하게 자리잡지 못한 시기에 활동한 0세대 작가들의 작품세계에서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혼란이 강하게 드러나는데 비해 미국이 하나의 국가로 자리잡고 급속히 성장하던 시대에 살던 1세대 작가들의 작품색은 소년소녀의 감수성과도 상통하는 소박한 낙천성을 띄고 있는 것. 그리고 미국이 열강 중 하나로 확고히 자리잡은 시대에 속한 3세대 작가들의 작품에서는 성인으로써 자신이 가지게 된 능력을 어떻게 사용하여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중요하게 다뤄진다. 그리고 1세대와 3세대의 연결고리인 2세대 작가들의 작품세계는 저 두 세대의 중간적인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1세대의 소년적인 감성에서는 벗어났지만 3세대가 보여준 강한 자기확신과 자신감에는 아직 이르지 못하고, 어느 정도 자신을 인식하면서도 아직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에서는 벗어나지 못한 청년적 감성을 기반으로 그래도 오늘보다는 더 나은 내일을 열어나갈 수 있으리라는 낙천성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일단 오 헨리의 작품들 자체가 미국문학 2세대 작가의 가장 모범적인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은 명백하다. 또한 2세대 작가진 중에서 오 헨리를 빼면 이 세대를 대표할만한 작가가 딱히 없다. 진 웹스터는 작품수가 너무 적고, 잭 런던의 작품들은 경향소설의 특성이 너무 강하다. 따라서 오 헨리를 빼고는 19세기 후반 미국의 순문학+보편적 대중문학을 설명할 수 없고, 만약 미국 문학사에서 오 헨리의 영향력이 사라졌다고 가정한다면 그 바로 뒷 시대에 찾아온 미국 문학의 황금기는 없었거나, 실제 역사와는 전혀 다른 형태일 가능성이 높아보이는 것이다. 좀 더 낭만적으로 표현하자면 마트 트웨인이 보여준 소년(톰 소여와 허클베리 핀)이 어떤 과정을 거쳐 제이 개츠비와 어부 노인 산티아고로 성장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바로 오 헨리가 그려낸 청년들이다.

또한, 세대론적 측면 이외에 작품 자체의 특징에 주목하더라도 오 헨리는 '현대 단편소설의 모범을 제시한 인물'로써 문학사적 중요성을 가진다. 결국 전후 다른 세대의 작가들에 비해 임펙트가 부족하다는 정도면 모를까 문학사적 중요성 자체는 전혀 부정할 수 없는 인물인 셈.

미국에서는 그의 이름을 따서 오 헨리 상을 제정했다. 이 상은 미국과 캐나다에서 한 해 동안에 발표된 가장 우수한 단편에게 시상하는 상이다. 윌리엄 포크너, 스티븐 킹, 조이스 캐롤 오츠, 앨리스 먼로 등 수상자들도 이름값이 높기로 유명하다.

오 헨리의 단편 소설이 동화 전집 사이에 끼어 있는 경우도 자주 있다. 70년대 일본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진 만화 세계 옛날이야기 (まんが世界昔ばなし, 1976)에서는 붉은 추장의 몸값과 20년 뒤가 애니로도 만들어져 들어가 있었다.[3]

1908, 건강이 악화하여 글쓰기를 중단하였고, 그 와중에 재혼한 아내와 이혼했다. 191065일에 세상을 떠났으며 유일한 핏줄인 딸 마가렛에게 남긴 그의 유언은 다음과 같다.

"Turn up the lights - I don't want to go home in the dark."

"불을 밝혀다오. 어둠 속에서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2. 작품[편집]

단편이 무려 286편에 달한다. # 영어 원문 사이트 #가 읽기 좋다. 한국에선 전집이 못나오고 이 출판사에서 몇개, 저출판사에서 몇개 하는 식으로 띄엄띄엄 번역되어 있어 집계하기도 난감하고, 잘 알려진 작품 위주로 번역하다보니 수록작이 거진 다 겹치는데 한두작품만 다른 역본이 난립해서 책을 구매해서 보려는 독자들을 난감하게 만든다. 오 헨리 뿐 아니라 체호프, 모파상 같이 단편 위주로 집필 활동을 한 작가들의 국내 번역 현황은 대개 이렇다. 대략 60여편 가량이 번역, 출간되어 있어 있다.

20년 후 (After 20 years)

줄거리

밥과 지미는 뉴욕에 사는 18세와 20세 된 절친한 친구 사이이다. 어느 날 밥은 돈을 벌기 위해 서부로 떠나기로 하고 믿음직하고 성실한 친구 지미와빅 조우라는 식당에서 마지막 식사를 하고 헤어진다. 그 둘은 헤어지면서 20년 후 같은 시각, 같은 장소에서 만나기로 약속한다.

20년 후, 인적이 거의 없는 비바람 부는, 대부분의 건물과 상점들의 문이 닫힌 어두운 뉴욕의 거리로 밥이 돌아온다. 빅 조우라는 식당이 있던 자리에 들어선 철물점 문간에 밥이 다이아몬드가 박힌 넥타이핀과 시계로 한껏 치장한 채 나타나는데, 거리를 순찰하던 경찰관이 그를 주시하며 살피자 별일 아니라며 자신이 그곳에 있는 이유와 자신이 성공했다는 것 등에 대해 이야기 해 준다.

경관이 떠나고 20분쯤 후 한 사내가 와서 밥을 찾고 그 둘은 반가워한다.

간간히 불던 비바람이 이제는 끊임없이 불어오고, 오랜만의 회포를 풀자며 팔짱을 끼고 또 다른 식당을 찾아 가던 길에 전등이 밝은 곳에서 밥은 팔짱을 낀 사내가 지미가 아닌 것을 알아보고 놀란다. 그때 그 사내는 쪽지 한 장을 내민다.

거기에는 철물점 앞에서 만났던 경관이 바로 지미 자신이었으며 지명 수배된 범죄자인 밥을 차마 자신이 체포할 수 없어 다른 형사를 보낸다고 적혀 있었다.

[출처] 20년 후 - 오 헨리|작성자 혜문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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