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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이..ㅋㅋ) 장영실
작성자 초강초 등록일 09.03.07 조회수 99
장영실

 기생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어려서 부터 주위 사람들에게 온갖 수모를 받았으나, 그것을 참아내고 주변에서부터 하나하나씩 이치를 따져 그 원리를 알아내 더욱더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기구들을 만들어 내곤 하였다.  세월은 흘러 세종대왕으로부터 인정을 받게 되었다.  마침내 노비의 신분을 벗고 궁에서 일하게 되었다니, 신기한 일이였다. 나는 이 책을 읽고 장영실에게 또, 한번 한 가지를 배웠다.  그것은 바로 누구든지 열심히 노력하면 된다 는 것을 라는 말이다.
한편, 그는 세종대왕의 깊은 배려에 대해 감사하는 뜻에서 열심히 연구한 결과 우리나라 최초의 천체 관측기구인 '간의'를 만들었고, 뒤이어 1년 만에 천체 관측기구인 '혼천의'를 만들어 세종대왕을 놀라게 했다. 나 역시 장영실의 계속되는 발명에 놀랄 수밖엔 없었다. 장영실은 일 할 때도 백성을 항상 걱정하며 사랑했다. 이런 장영실의 노력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시간을 알리는 기구인 '자격루'가 탄생하였다. 그러나 '앙부일구'라는 더 간편한 해시계를 발명했다. 여기까지만 읽어도 장영실이 우리나라의 과학발전에 얼마나 큰 공을 기여했는지 알 수 있다.  장영실의 목표는 '나의 노력으로 남을 위해 무언가 일을 한다는 것은 매우 기쁜 일이다.’ 였다. 나도 그걸 실천에 옴길 것이다.  왕의 걱정을 풀어주는 사람이라고도 불렸던 장영실은 계절의 변화와 시간의 흐름을 한눈에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장영실은 안타깝게도 불행한 최후를 맞게 되었다.  어느 날, 장영실이 세종대왕의 분부에 따라 몇 주일 동안 고생하며 만든 가마를 세종대왕이 탔다.  이 가마는 장영실이 만든 가마이기 때문에 흔들림이 거의 없었다.  그런데 얼마쯤 가다가 이게 웬일인가!  가마 드는 사람 중 한명이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면서 가마가 땅에 부딪쳐 부서지고 그 속에 타고 있던 세종대왕은 영문도 모른 채 넘어지고 말았다.  이 소식을 들은 의금부에서는 당장 사형을 내렸지만 사형만은 면하게 해달라는 세종대왕의 명에 옥살이를 하게 되었다. 우리는 그가 언제 죽었는지도 모른다. 어려울 때도 꺾이지 않고 항상 어떤 상황에서나 이치와 까닭을 찾아 알려고 했던 장영실이다. 그분은 우리 모두에게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훌륭한 발명가 장영실에게 지금도 많이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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