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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대의 요부[정희빈 사랑에 살다...]
작성자 김나연 등록일 13.09.17 조회수 25

독후감 : 장희빈 사랑에 살다.

나는 ‘장희빈 사랑에 살다’라는 책을 독후감으로 써보려 한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수많은 생각들이 머리를 스치듯 지나갔다.

희빈이 과연 희빈의 잘못으로 사약으로 명을 끊은 것인가...

숙빈 최씨는 과연 정말 명랑하고 씩씩하고 착하기만 했던 것인가...

인현왕후의 꾀로 희빈이 넘어간 것이 아닐까..

답은 그 책 속에 나와 있었다. 장희빈..

아니, 장옥정 그녀는 한 남자를 사랑하고 사랑하고 사랑했다.

조선의 국왕이기 전에 여인의 지아비였던 이순.. 그는 유혹하고 사랑하고 배반하였다. 하지만 역사는 그를 요부라 기록하였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이제부터 그 억울한 이야기를 풀어나가겠다.

한 여인이 있었다.

역관의 딸로 태어나 침방나인이 되었고,

승은을 입은채 맨 발로 쫓겨나가기까지 하였다.

6년여 동안 여인이 오를 수 있는 자리인 왕비의 자리에 머물렀으나,

희빈으로 죽었다.

그 여인의 이름은, 장옥정.

하지만 후대 사람들은 그녀를 희대의 요부라 부른다.

역사는 승자만을 위한 기록이기 때문이다.

역사의 패자였기에 억울하게

왜곡되었을지도 모를 희빈장씨의 이야기...

장옥정은 장경이라는 역관의 따로 태어났다.

장경은 딸이 그냥 좋은 남편에게 시집가 자식 많이 낳고 금이야 옥이야 하며 살기를 원했다. 아니, 어쩌면 그래야 한다고 믿었을지도 모른다. 경국지색의 미모를 지닌 옥정을 보며... 새해를 맞아 탑돌이를 하고 있을 때였다. 한 스님이 옥정을 보며 혀를 끌끌 차며 말하였다. “경국지색의 자색을 지녔구나. 허나 어찌 할꼬? 나라의 국모가 둘일 수 없을 뿐더러, 하나가 없으면, 나머지 하나도 지아비에 의해 피를 토하고 죽임 당할 명운인 것을!” 그때부터 옥정의 첫맛은 달고 끝맛은 쓴 삶이 시작된것이다. 장옥정은 아버지 장경이 생을 마감한 후 집안을 위해 궁궐에 들어갔다. 고되고 고된 궁궐 생활 속에 다시 삶의 원동력이 생겨났다. 바로 매일 밤 인경왕후를 재치고 만나고 있는 이 나라 조선의 임금, 국왕! 이순이다. 이 때 당시 천한 신분으로 얼마나 영광인가... 이런생각이 없지 않아 있었다. 이렇게 조금씩 달빛과 함께 사랑을 키워나가고 있던 도중.. 옥정은 침방나인이 되고, 인경왕후는 세상을 떴다. 인경왕후와 서로 친분이 있었던 옥정은 인경왕후가 심한 전염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고도 끝까지 자신을 지켰다. 사내도 아닌 여인으로써 이 얼마나 멋진것인가... 또 죽는 순간 듣고 보았다. 이순과 그녀의 약속을.. "서로의 마지막은 함께 지켜주자고.." 옥정은 그 모습을 보며 부럽기도 하며 너무 아름답고 슬픈 장면이라 눈가를 촉촉히 적셨다. 그리고 옥정도 이순에게 약속을 제안했다. 꼭 서로의 마지막은 지켜주자고.. 이순도 옥정의 제안은 흔쾌히 받아들였다. 하지만 옥정을 모르고 있었을 것이다. 그 마지막이 얼마나 비참하고 원통한지...

그 시기 옥정과 이순의 만남이 세상에 밝혀지고야 말았다. 궁은 그야말로 호들갑 이였다. 그럴만도 하다. 왜냐하면 국모의 자리가 비워 있을 때 임금의 승은을 입은 나인이 나오고 말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국모의 자리는 이순과 옥정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 너무나도 쉽게 국모의 자리는 인현왕후가 되고 말았다. 하지만 이순은 인현왕후와 상관없이 계속 옥정과의 만남을 끊지 않았다. 그 사실이 대비전에 알려지자 대비와 대왕대비는 옥정을 궁에서 쫒고 말았다. 옥정은 대비 김씨에게 버선발로 쫒겨난 지 삼년을 훌쩍 넘겨 사 년째 접어들던 해에 비로소 다시 궐 안에 들어올 수 있었다. 이때 중전 민씨는 열여덟의 청초한 나이였고, 옥정은 스물여섯 여인으로 농염함이 한껏 무르익어 갈 때였다. 하지만 아직 옥정을 위한 직첩은 마련되지 않았고, 그저 승은을 입은 상궁으로서 거처할 처소인 응향각이 마련되었을 뿐이었다. 인현왕후는 이렇게 쉽게 중궁의 자리에 올랐는데 장옥정은 무엇일까..? 또한, 조선의 국왕이 이렇게도 힘이 없었을까? 이순은 밤이슬을 밟으며 아직도 옥정과 만남을 서슴치 안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에 옥정에게도 숙원이라는 높은 자리를 이순이 내주었다. 이제는 누구도 내쫒지 못하는 어엿한 왕실의 사람이 된것이다. 대비전과 중궁전의 눈치를 보지 않고 옥정을 보러갈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왕실 사람들은 매일 혀를 끌끌 차며 천한 피라고 험담을 하였을 것 같다. 옥정 또한 어려운 궁살이를 하였을 것이다. 왜냐하면 조선은 재주와 능력에 상관없이 신분을 우선시 하는 나라였으니까... 이순은 서서히 그러면서 인현왕후 민씨는 잊혀지게 되었다. 장옥정에 비하여 중전 민씨는 얼마나 비참한가... 중전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 태어난 여인이 중전으로써의 자존심을 지키지 못하고 있으니 말이다. 민씨가 비참해 질 때, 어느덧 민씨는 중전 민씨가 아닌 폐비 민씨가 되었다. 이순과 옥정의 왕자를 생산하게 되어 그 왕자가 원자에서 세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이순은 장씨를 정1품 빈(嬪)에 봉하고 빈호는 희(禧)로 정하였다. 비로소 이제야 장옥정이 한 나라의 어엿한 국모, 장차 이 나라를 이끌어갈 세자의 어미 장희빈이 탄생하는 순간이였다. 하지만 장희빈는 모르고 있었다 지금부터가 불행의 시작임이를... 이렇게 6년여 시간동안 원자와 함께 이순과 옥정은 행복한 국모의 삶을 살았다. 아니, 서서히 이순도 옥정을 질려했을 것이다. 한 번 국모를 쫓은 이가 두 번 못 쫓일까..? 그 시간동안 폐비 민씨를 다시 중궁전에 올리고 정권을 되찾아려 폐비 민씨의 주위사람들은 끊임 없이 노력하였다. 그때 [사씨남정기]가 탄생하였다. 이것은 민심에게 아주 큰 폐를 끼쳤다.지금도 시주에 널리 있는 책이다. 교묘한 교씨와 착한 사씨를 옥정과 민씨에 빗대어 만든 김만중의 이야기이다. 궁에서는 이순도 전에 민씨의 시녀였던 무수리 최씨를 만나 옥정을 뒤로하고 있었다. 그 뒤로 옥정은 다시 후궁의 자리로 내려가고 폐비 민씨가 중전 민씨로 돌아왔다. 장옥정, 아니 장희빈은 이순에 대한 실망이 큼에도 불구하고 매일 이순을 그리고 있다. 하지만, 그사이 무수리 최씨는 숙원 최씨를 올라갔다. 점점 희빈으로부터 거리가 멀어져갔다. 그럴수록 숙원 최씨와 중전 민씨에게로 발걸음이 잦아졌다. 그런 틈을 타 민씨와 최씨는 희빈을 내칠 방법을 궁리하고 또 궁리하였다. 그래서 생각해 내였다.‘모함’사랑에 눈이 멀어있던 이순은 그 말에 속아 넘어가고 말았다. 어쩌면 장희빈에게 하였던것을 중전과 숙빈최씨에게 주고 다시 중전과 숙빈최씨에게 주었던 것을 희빈에 주는 것 같다. 이순도 그 달콤한 유혹에 넘어가 버린것이다. 희빈장씨는 억울했다. 억울함은 이순에게 호소하였다. 하지만 이순에게는 이미 희빈이란 사람은 잊혀진지 오래였다. 그때의 단 한 마디..‘나를 위해 죽어 다오.’희빈은 그 자리에서 넘어지고 말았다. 매일 한 사람만 그리고 사랑했던 장옥정은 어땠을까..? 그때도 이순만을 그리며 사랑했을까..?그때서야 알아챘다. 내가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걸. 그 예감은 딱 떨어졌다. 몇 칠 뒤 이순으로부터 사약이 떨어졌다. 희빈은 마셨다. 이순을 위해.. 오로지 그 한 사람만을 위해..

궁궐로 들어와 영광스럽게도 전하의 승은을 입게 되었고, 그 사실이 밝혀지자 버선발로 궁에서 쫓겨나야만 했다. 사가에서도 매일밤 그 분이 오실까 기대를 해 곱게 단장을 하고 오시는 날이면 행복하게 지내고 오시지 않으면 조금 늦으신다는 맘에 뜬눈으로 밤을 지새었다. 그랬던 나날이 3년... 궁에 돌아오기는 했으나 첩지도 마련되지 않았다. 힘들게 숙원에서 희빈으로 올라가고 조선 여인의 최고의 자리 중전에도 올랐다... 그를 너무나 사랑했기에.. 너무나 사랑하고 또 사랑했기에 그를 위해 죽음에게 몸을 담궈야만 했다. 하지만 지금 사람들은 희빈을 요부라 부른다. 역사는 패자보다는 승자를 우선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희빈은 역사의 패자였기에..

희빈과 인연왕후는 숙종.. 이순의 희생양인 것 같다고 생각한다. 달면 삼키고 쓰면 버리는 이순의 변덕스러움 때문에.. 또한 자신의 권력을 우선시하는 본능때문에.. 사랑은 했지만 자신의 권력보다 우선시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민씨와 희빈모두 패자로 만든것이다. 하지만 그 중의 더 큰 피해는 희빈이기 때문에 역사에는 인연왕후를 승자라 기록한 것이였다.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닌 오로지 그 한 사람만의 얕은 수 때문이다. 그녀는 그를 위해 모든 것을 버렸고 그는 그녀를 위해 비극적인 삶을 주었다...과연 그것이 그녀의 사랑에 대한 대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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