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2일 매봉산을다녀와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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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청천중 | 등록일 | 09.05.02 | 조회수 | 352 |
<토요 체험 학습> 매봉산을 다녀와서 1학년 이민정 나는 오늘 매봉산으로 토요 체험 학습을 다녀왔다. 나를 포함해서 7명 정도의 학생들과 보건 선생님, 국어 선생님도 함께 가셨다. 우 리는 아침 9시경에 학교에서 모여 매봉산으로 갔다. 매봉산 입구에 도착하여서 사진도 찍고 송우암 신도비 및 묘소에 대해 적혀 있는 안내판도 읽어보았다. 평소에 쉽게 접할 수 있었지만, 솔직히 송시열이라는 분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없었다. 안내판을 차근차근 읽어 내려가면서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다. 송 시열이라는 분은 조선 중기의 학자이며 정치가로 노론의 영수이다. 인조 11년에 생원시에 합격하시고, 효종의 스승이 되었다고 한다. 효종은 조선의 제 17대 왕으로 내가 평소에 북벌계획으로 잘 알고 있었던 왕이었는데, 이런 분의 스승이셨다니 너무 놀라울 뿐이었다. 그리고 병자호란 후 낙향하여 학문에 정진하고 효종이 즉위하자 다시 등용되어 북벌계획을 추진했다고 한다. 그리고 현종 때 좌의정이 되셨다고 한다. 좌의정이면 오늘날에 비교하자면 무척이나 높은 자리라고 한다. 내 주변에 이런 높으신 분이 계신다니 괜히 내가 뿌듯하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숙종 15년에 세자 책봉에 반대하는 상소를 올려 제주에 귀양을 가셨다가 국문을 받기 위해 상경하는 도중 남인의 책동으로 정읍에서 사사되셨다고 한다. 너무 안타깝고, 슬픈 일이었다. 안 내판 옆에는 송우암 신도비가 있었다. 본래 묘소와 신도비는 수원 무봉산에 있었으나 숙종 23년에 이곳으로 이장했다고 한다. 신도비는 정조의 어필로 정조 3년에 세운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너무 특이한 것은 국난이 있을 때에는 신도비가 땀을 흘린다고 한다. 나는 ‘실제 이러한 일이 가능할까?’ 하는 의심이 있었으나 나중에는 왠지 있을 법도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 내판도 다 읽고, 신도비도 구경한 우리는 가파른 돌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묘소로 가는 길까지는 예쁜 돌계단으로 길이 잘 되어있었다. 너무 가파른 계단이어서 힘도 들었지만 올라가다가 노랗게 핀 예쁜 꽃도 보고 귀여운 작은 새도 보고 날씨도 우리를 반겨주는 듯 따스한 햇살도 비추어 너무 좋았다. 그렇게 묘소까지 다 올라온 우리는 너무 예쁜 하늘에 감탄하였다. 그래서 사진도 찍고 우암 송시열 묘소 앞에서 참배도 했다. 참배를 하고 우린 올라온 김에 정상까지 올라가기로 했다. 초등학생 때에도 한번 정상에 올라가본 적이 있는데 가는 길이 무척 가파른 길이라서 카메라를 들고 오시는 보건선생님이 괜찮으실까 걱정이 되기도 했는데, 건강하신 보건선생님을 믿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역시나 가는 길이 너무나 힘들었고 다리가 너무 아팠다. 모두들 힘들어서 죽을 것 같다는 표정을 지으며 힘겹게 산을 올라가는 것이 너무 웃기고 즐거웠다. 나 역시 너무 힘들었다. 올라가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가져온 음료수를 마시며 간신히 정상에 올랐다. 무척이나 힘들었지만 올라오고 나니 전망도 너무 좋고, 탁 트인 앞을 보니 기분이 너무 좋았다. 힘들게 올라온 보람이 있었다. 그런데 정상에 올라와 보니 쓰레기가 많이 있었다. 이런 좋은 곳에 누가 쓰레기를 버렸는지 정말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내가 가져온 과자를 다 먹고 그 과자봉지에 쓰레기를 주워 담아서 내려올 때 들고 내려 왔다. 올라올 때 가파른 길이었던 만큼 내려갈 때는 혹시나 넘어질까 조심조심 내려왔다. 내려와서는 선생님이 주신 초코파이와 음료수를 마시며 쉬었다. 힘들었던 만큼 맛은 꿀맛이었다. 오늘은 참 나에게 뜻 깊었던 하루였다. 내 주변에 있었지만, 자세히 알지 않았던 매봉산을 이렇게 자세히 알게 되어서 너무 기뻤다. 앞으로도 우리 고장에 있는 모든 것들을 하나하나씩 알아가는 시간을 많이 가졌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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