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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김종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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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랑의 후예
작성자 김종민 등록일 15.01.09 조회수 40
황 진사(황일재)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지난해 가을이었다. 숙부님이 지리산에서 도인이 나와 사주와 관상을 보는 곳이 있는데 아주 재미있으니 같이 가자는 것이다. 그곳에서 황 진사를 만났다. 나뭇잎이 다 지고 그 해 가을도 깊어졌을 때다. 문밖에 인기척이 있어 나가 보니 관상 소에서 육효를 뽑고 있던 그 황 진사였다. 출타 중이던 숙부님을 찾아왔다는 그는 나에게 명약이라며 종이 조각에 싼 것을 주었다. 만병에 좋은 것이라고 하였다. 내가 아침 밥상을 받았다가 나온 터라 숙모님이 부르시는 소리를 듣고 들어가려고 할 때 황 진사는 밥이 남았거든 좀 달라는 듯 비굴하게 웃었다.

그는 밥을 한입에 삼킬 듯이 부리나케 퍼먹고 찌개 그릇을 긁고 하더니, 숟가락을 놓기가 바쁘게 곧 모자를 쥐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몇 번이나 절을 하곤 했으나, 아까 하던 약 말은 아주 잊어버린 듯이 다시는 아무런 말도 없었다. 그 후, 사흘째 되던 날 아침에 또 황 진사가 그의 친구라면서, 그보다 키는 더 크고 흰 두루마기는 입었으되 그에 지지 않게 눈과 코와 입이 실룩거리는 위인과 함께 찾아와 자그마한 책상 하나를 사라고 하였다. 그날 나의 집에서 포식한 이래 여태 굶었다는 황 진사를 두고 내가 안에 들어가 돈 이십 전을 주선해 나와 그들에게 주었을 때, 그들 두 사람은 무수히 절을 하고 나서 책상을 도로 메고 가 버렸다.

어느 몹시 추운 날이었다. 낮이 짐짓 했을 때다. 밖에서 소리가 들려 나가 보니 황 진사가 연방 손으로 콧물을 닦고 서 있는 것이다. 나는 곧 그를 나의 방에 안내하였다. 그는 배를 두르고 있던 때묻은 전대 하나를 꺼내었다. 그 속에는 주역 책이 있었다. 나는 처음 관상 소에서 그를 보았을 때부터 생각하던 바가 있어, 그가 평소 얼마나 지략과 조화를 부려 보고 싶어하는 위인인가를 짐작은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음양 오행의 지모 조화가 겨우 가루약과 친구의 책상을 들리고 다니는 것쯤인가 하고 생각할 때, 나 자신도 모르게 한숨이 새어 나왔다. 그 해 겨울, 그는 내가 성이 가시도록 자주 나를, 아니 내 삼촌을 찾아 왔다. 그는 언제나 나를 볼 때마다 오랫동안 삼촌께 못 뵈어 죄송하다고 하였다. 눈에 고인 물이 눈물이라면 황 진사의 두 눈에는 언제나 눈물이 있었다. 그는 가끔 나에게 그가 혈육 없는 것을 한탄하였다.

며칠 뒤, 숙모님이 황 진사의 중매를 들게 되었다. 그 즈음 황 진사는 거의 날마다 우리 집에 들르게 되어 그의 딱한 형편을 걱정하고 있던 숙모님은, 그 때 마침 집에 돌아와 계시던 숙부님과 의논하고, 그를 건넛집 젊은 과부에게 장가를 들게 해 주자고 하였다. 그러나 그는 과부라는 말에 노기 띤 눈을 부라리곤 하더니,

“황후암 육대 손이 그래 남의 가문에 출가했던 여자한테 장갈 들다니 당하기나 한 소리요”

라며 분함을 누르느라고 목소리에 강한 굴곡이 울리었고, 낯에는 비통한 오뇌의 경련이 일어나 있었다. 해가 바뀌고 새해가 되었다. 숙부님은 금광에 계시느라 새해까지도 숙모님과 나 단둘이서 쓸쓸히 보내게 되었다. 섣달 중순 즈음에서 한 보름 동안은 일금 얼굴을 뵈지 않던 황 진사가 정월 초하룻날 아침에 대문밖에 와서는 숙부님께 새해 인사를 드리러 왔노라고 하였다. 숙부님이 안 계신다고 하니, 그러면 숙모님이나 뵙고 가겠다고 하였다.

숙모님은 마침 있는 음식에 반갑게 구시며, 떡과 술상을 차려 내주셨다. 그는 이튿날도 찾아왔다. 사흘째도 왔다. 이리하여 정월 한 달 동안을 거의 매일 같이 숙부님께 새해 인사를 드려야 할 것이라면서 찾아왔다. 그러나 그는 결국 숙부님께 새해 인사를 드리지 못하고 말았다. 봄도 지나 여름이 되었다. 새는 녹음 속에 늙고, 물은 산골을 울리며 흘렀다. 그 때 돌연히 숙부님이 어떤 사건으로 검거되자, 나는 시골 어느 절간에 가 지내려던 피서 계획을 포기하고, 괴로운 여름 한철을 서울서 나게 되었다. 어느 날 서대문 밖에 숙부님을 면회하고 돌아오는 길에 광화문 통을 지나오는데 황 진사를 만났다.

그는 나를 한쪽 구석에 불러 놓고, 지극히 중대한 사실을 발견했노라고 한다. 바로 자신의 조상이 신라적 화랑이라는 것이다. 황 진사를 광화문 통에서 만난 뒤, 두 달이 지난 어느 날, 나는 숙모님을 모시고 병원에 가다가 그를 보게 되었다. 머리가 더부록한 거지 아이 몇 놈과, 아편 중독자 몇과 그밖에 중풍 장이, 앉은뱅이, 수족 병신들이 몇 둘러싼 가운데에 한 두어 뼘 길이쯤 되는 무슨 과자 상자를 거꾸로 엎어놓고, 그 위에 삐쩍 마른 두꺼비 한 마리와, 그 옆의 똥그란 양철통에 흙빛 연고약을 넣어 두고 약 쓰는 법을 설명하는 위인이 있다.



그는 약물에다 흙빛 고약을 찍어 넣어서 저으며,

“자아, 단단히 보시오. 우리 몸에 있는 썩은 피가 두꺼비 코끝만 들어가면 그만 이렇게 홍로일점설, 봄철의 눈과 같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립니다!”

하고, 약물 접시를 들어 여러 사람 앞에서 한 번 내두르고 나서 기침을 한 번 새로 하더니,

“여러분, 여기 계시는 이분은 우리 조선에서 유명한 선생이올시다. 그런데 선생께서는 두 달 전부터 충치를 앓으셔서 병석에 누워 계시다가 이 약으로 말미암아 어저께 벌레를 내고 오늘부터 이렇게 이 곳까지 나와 주시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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