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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박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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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신불
작성자 박태성 등록일 15.01.23 조회수 37
나는 스물 세 살 때인 1943년 일본의 대정대학 재학 중에 학병으로 끌려가 목숨을 건지기 위해 탈출을 결심하고, 대정대학에 유학한 바 있는 불교학자인 진기수 씨를 찾아가 도움을 청한다. 생면 부지 적국의 옷을 입은 한국인인 '나'를 믿지 않자, 나는 오른손 식지를 깨물어 '원면살생(願免殺生) 귀의불은(歸依佛恩)'이라는 혈서를 써 올려, 결국 그의 도움으로 정원사에 도착하여 원혜대사를 배알한다. 이곳에서 나는 수업을 하는 도중, 금불각을 발견하고 불상 역시 대수롭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막상 등신불을 대했을 때 나는 전율과 충격을 받는다. 등신불은 사무치게 애절한 느낌을 주는 결가부좌상이었다. 젊은 승려인 청운의 이야기와 만적선사 소신성불기를 읽고 나는 만적의 이야기를 알게 된다.
만적은 법명이고 속세에서의 이름은 조기이다. 그는 금릉에서 태어났으나 아버지가 누구인지 모른다. 어머니 장씨는 사구에게 개가하여 그의 외아들 사신과 같이 산다. 기와 신은 같은 또래인데, 어머니가 신에게 돌아갈 재산을 탐내어 신의 밥에 독약을 감춘다. 우연히 그것을 엿본 기는 그 밥을 자기가 먹으려 한다. 어머니가 이를 보고 기겁을 한다.
며칠 뒤에 신이 집을 떠나서 자취를 감추어 버리고, 기도 어머니의 사악함에 환멸을 느껴 가출하여 중이 된다. 만적은 법림원의 취뢰스님의 상좌로 불법을 배우다가 열여덟에 취뢰스님이 열반하자 은공을 갚기 위해 불전에 소신공양할 결의를 보인다. 그러나 운봉선사가 만류한다. 운봉선사의 알선으로 혜각선사를 만난 만적은 스물 세 살 되던 해 겨울 금릉에 나갔다가 10년 만에 문둥병에 걸린 사신을 만난다.
만적은 '신'의 목에 염주를 걸어 주고 절로 돌아와 소신 공양을 결심하고는 화식을 끊고 이듬해 봄까지 먹은 것은 하루에 깨 한 접시씩뿐이다. 이듬해 봄 법사스님과 공양주 스님만을 모시고 취단식을 하고 한달 뒤 대공양을 한다. 만적이 몸을 태우던 날 육신이 연기로 화해 갈 때 갑자기 비가 쏟아졌으나, 단 위에는 내리지 않았으며, 또한 그의 머리 뒤에는 보름달 같은 원광이 씌워져 있었다. 이러한 신비가 일어나, 모인 사람들은 불은을 입어 모두 제 몸의 병을 고친다. 병을 고친 사람들이 앞을 다투어 사재를 던져 새전이 쌓이게 된다. 모인 새전으로 만적이 탄 몸에 금을 입히고 금불각에 모신다.
나는 금불각의 등신불이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으리라고 생각하며 인간의 고뇌와 슬픔을 아로새긴 부처님(등신불)이 하나쯤 있어도 무방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야기를 마친 원혜대사는 '나'에게 남경에서 진기수 씨에게 혈서를 바치느라 입으로 살을 물었던 오른손 식지를 들어 보라고 한다. 왜 그 손가락을 들어 보라고 했는지, 이 손가락과 '만적'의 소신공양과 무슨 관계가 있다는 것인지, 대사는 아무런 말이 없다. 북소리와 목어 소리만 들려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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