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조선정치라이벌훈구VS사림 조선초기는 새로운 국가의 건설을 도모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었다. 특히 유교적 정치이념에 입각한 정치적·문화적 장치가 정비되어 갔다. 때문에 피지배층의 입장에서 볼 때 그런 대로 개혁적 조처가 마련되어 갔다고 볼 수 있다. 이 시기에 민중들의 반란과 같은 큰 사건이 별로 없었던 것이 이를 말해 준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지배세력 내부의 권력쟁탈전은 계속 되었다. 그리하여 2차에 걸친 왕자의 난과 수양대군의 왕위찬탈 등이 있었던 것이다. 유신세력을 억제하고 실추된 왕권을 회복시키려는 움직임이 세종의 둘째아들이며 단종의 삼촌이었던 수양대군을 중심으로 일어났다. 그는 권람·한명회 등과 모의하여 김종서·황보인등의 중신과 자신의 친동생인 안평대군을 살해하였다. 그리고 영의정 및 이조·병조판서와 내외병마도통사의 직을 겸임함으로써 정권과 병권을 독점하였다. 그러나 수양대군의 중신제거와 권력장악은 부작용을 초래했다. 특히 김종서의 심복으로 함경도 도절제사였던 이징옥이 문제였다. 이를 염려한 수양대군이 함경도 도체찰사로 박호문을 파견하자 이징옥은 드디어 반란을 일으켰다. 그는 자신을 대금국 황제라 칭하고 여진을 포섭하여 대항했다. 이 반란은 진압군에 의해 진정되었지만 민심은 흉흉해졌다. 이런 가운데 수양대군은 어린 단종을 내쫓고 왕위에 올랐으니 곧 세조( 世組 :1455∼1468)이다.
시대의 라이벌 성삼문과 신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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