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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도서 4. 푸른 늑대의 파수꾼(김은진)

이름 이동진 등록일 19.04.14 조회수 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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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회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우리들의 할머니를 위한 특별한 시간 여행

창비청소년문학상이 올해로 아홉 번째 수상작 『푸른 늑대의 파수꾼』을 출간한다. 한국문학과 아동문학을 이끌어 온 창비에서 2007년 진정한 청소년문학의 활성화를 위해 제정한 창비청소년문학상은 매회 주목받는 작품들을 발표하며 우리 청소년문학에 신선한 활력을 불어넣었다. 제1회 수상작인 『완득이』가 동명의 영화로도 제작되어 폭넓은 인기를 얻었음은 물론이고, 제2회 수상작 『위저드 베이커리』는 에스파냐 어로 번역, 수출되어 2015년 12월 멕시코에서 초판만 1만 부가 발행되었다. 작품을 읽은 멕시코 청소년들이 개인 블로그와 유튜브에 생생한 리뷰를 남기는 등 현지에서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는 소식이다. 제9회 수상작 『푸른 늑대의 파수꾼』은 한국을 넘어 세계로 공감대를 넓히기 시작한 창비청소년문학상에 거는 기대를 충족할 작품으로, 일본군 강제 위안부라는 역사적 사실을 깊이 있게 다루면서도 청소년들이 흠뻑 빠져들 만한 문학적 긴장과 재미를 품고 있다. 문학을 통해 역사를 들여다보는 즐거움을 선사함으로써 우리 청소년문학의 새로운 성취로 기억될 작품이다.

일본군 강제 위안부 문제를 다룬 뜻깊은 청소년소설의 등장

그동안 일본군 강제 위안부를 소재로 한 청소년소설이 드물게 출간되어 왔으나 이만한 완성도를 보인 작품은 흔치 않았다. 심사위원 4인은 물론이고 심사 과정에 참여한 6인의 청소년들 또한 “가슴 아픈 과거를 이렇게 풀어낼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현실감이 높다.”라고 호평했다.
작품의 무대는 2016년 오늘날의 서울과 1940년대 일제 강점기의 경성 거리다. 현재와 과거를 오가는 짜임새 있는 구성으로 눈을 뗄 수 없는 긴장감을 선사한다. 어머니와 단둘이 사는 16세 소년 ‘오햇귀’는 봉사 활동을 하러 독거 할머니의 집에 방문한다. 할머니의 이름은 ‘현수인’. 한때는 맑은 노랫소리로 친구들을 행복하게 해 주며 조선 최고의 여가수를 꿈꾸었다는데 지금은 병들고 지친 모습으로 자리에 누워서만 지낸다. 할머니는 대체 무슨 일을 겪었을까? 과거를 회상할 때마다 고통에 신음하는 할머니를 보며 비밀을 궁금해하던 햇귀는 우연히 태엽이 거꾸로 감기는 시계를 발견해 1940년대 경성으로 빨려 들어간다. 그곳에서 햇귀는 소녀 시절 수인과 수인이 식모로 일하는 집의 딸인 하루코를 만나고, 곧 수인에게 악몽 같은 운명이 닥칠 것을 알게 된다. 우리 역사의 지울 수 없는 상처인 일본군 강제 위안부 문제와 맞닥뜨린 햇귀. 시간의 경계선을 넘어 소녀 수인을 구하려는 햇귀의 간절한 마음은 통할 수 있을까?

완득이를 잇는 새로운 여자 주인공 ‘현수인’
활력 만점 소녀 캐릭터의 탄생


『푸른 늑대의 파수꾼』에는 다양한 욕망을 지닌 10대 청춘들이 등장한다. 1927년 평양 출생인 수인은 “아바디, 내레 가수가 되면 어떻캈시오?”라고 물으며(20면) 당대 최고의 스타를 꿈꾸고, 하루코는 듬직한 샐러리맨을 만나 로맨틱한 사랑에 빠지기를 꿈꾼다. 2016년을 사는 햇귀는 답답한 생활에서 도망치는 게 소원이다. 개성 강한 세 사람이 시간을 뛰어넘어 만나는 장면들이 생생하고 흥미진진하다.
특히 경쾌하게 노래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긍정의 힘을 잃지 않는 수인은 독보적 매력을 뽐낸다. “남자 주인공은 완득이, 그 뒤를 잇는 여자 주인공은 ‘수인이’가 아닐까.”라는 평을 들을 만큼(아동청소년문학 평론가 박숙경) 심사위원들은 이 생기 넘치는 여자 주인공의 등장을 반겼다. 수인은 원래 소문난 왈가닥에 귀여움받는 막내딸이었지만, 일제 치하에서 남몰래 독립군을 돕던 아버지가 감옥에 갇히자 경성에 있는 조선 총독부 관리의 집에 식모로 가게 된다. 수인은 식모살이 중에도 “나 현수인이야. 이 정도로 인생 포기하지 않는다고.”라고 외치며(126면) 고군분투하고, 흥겨운 입심으로 독자들을 웃고 울린다. 그동안 우리 청소년문학의 아쉬운 빈틈으로 지적되어 온 ‘살아 있는 캐릭터’ 그 자체인 현수인의 등장은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도둑맞은 나의 청춘! 김해송의 목소리 끝에서 청춘이 불현듯 나타나 달음질쳐 왔다. 폭풍우처럼, 사자처럼. 나에게는 폭풍우가 몰아치듯 춤추고 사자가 포효하듯 노래할 자유가 있었다.
김해송의 노랫가락에 취한 듯 리듬을 타며 탁자 주위를 빙글빙글 돌았다. 맨발로 어설프게 탭댄스도 추었다. 잔을 들어 위스키 마시는 흉내를 냈다. - 본문(129면) 중에서

수인과 짝을 이루는 일본 소녀 하루코 또한 사랑스러운 인물이다. 사춘기를 지나는 하루코는 “죽을 것처럼 슬프다가 갑자기 즐거워졌다가 어떤 때는 미치도록 화가 나는 거 있지. 대체 무슨 병일까? (…) 어쩌면 난 외롭게 죽어 갈 거야.”(154면)라고 고민하고, 간호 장교가 되어 전쟁터로 가고 싶지는 않다며 괴로워한다. 선생님을 향한 첫사랑에 가슴앓이도 겪는다. 총독부 관리의 딸과 식모 소녀라는 큰 차이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힘없는 10대 소녀로서 한 시절을 함께 겪고 서로 위안이 되어 준다. 국경과 계급을 넘어선 이들의 우정이 작품에 따뜻한 온기를 불어넣는다.

아직 듣지 못한 말
“미안합니다, 마음으로부터.”


5년간의 자료 조사를 통해 작품을 창작한 김은진 작가는 1940년대 경성 무대를 실감 나게 복원한다. 유행가 「전화 일기」나 「청춘 계급」의 노랫말에는 위트가 넘치고, 미쓰코시 백화점 옥상 정원이나 창경원(오늘날 창경궁) 풍경 등이 손에 잡힐 듯 그려진다. 그러나 그 풍경 속에서 총천연색으로 빛나던 수인은 참혹한 운명을 맞이하고 만다. 되돌아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시간, 한 번뿐인 청춘 시절을 끝내 빼앗기고 마는 것이다. 수인의 밝고 명랑한 모습은, 이후 일본군 강제 위안부로서 처참히 살아야 했던 경험과 대비되어 더욱 짙고 선연하게 다가온다.
어쩌면 청소년 독자들은 일제 강점기를 “아무리 들어도 가슴에 와 닿지가 않는”(73면) 시대로 여겨 왔을지 모른다. 그러나 김은진 작가는 일본인 소녀의 입을 빌려 이렇게 말한다. “늑대는 어디에나 있스므니다. 도망쳐도 또 만나게 되지요. 한번 도망치면 영원히 도망치게 되므니다.”(104면) 아직 끝나지 않은 전쟁을 치르고 있는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해 도망치지 않고 함께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독자에게 던지는 묵직한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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