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 | 총 6개
변윤호
2018.11.06 10:27
주시경(周時經, 1876~1914)은 이름을 순수한 우리말인 ‘한힌샘’으로 지어 부른 것으로 유명했다. 우리는 그를 국문법의 창시자로 받들고 있으나 여느 사람들은 정작 그의 내력과 사상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다. 한글학자 주시경은 어느 정치가보다도 큰 공적을 쌓아 우리 겨레의 문자생활에 이바지했다.
김효원
2018.11.08 11:46
주시경(周時經, 1876~1914)은 이름을 순수한 우리말인 ‘한힌샘’으로 지어 부른 것으로 유명했다.배재학당 보통과에서는 서재필이 지지학을 가르쳤다.1905년 7월, 그는 국어연구와 사전편찬을 서둘러야 한다고 정부에 건의했다.그가 중국으로 망명해서 활동을 벌였더라면 신채호, 박은식, 김두봉과 같이 더 많은 업적을 남겼을 것이다.
윤예린
2018.11.08 11:48
수정
삭제
주시경은 우리는 그를 국문법의 창시자 이다 . 한글학자 주시경은 어느
정치가보다도 큰 공 을 쌓아 존경과 인정을 받고있다
민현정
2018.11.08 11:49
주시경(周時經, 1876~1914)은 이름을 순수한 우리말인 ‘한힌샘’으로 지어 부른 것으로 유명했다. 우리는 그를 국문법의 창시자로 받들고 있으나 여느 사람들은 정작 그의 내력과 사상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다. 한글학자 주시경은 어느 정치가보다도 큰 공적을 쌓아 우리 겨레의 문자생활에 이바지했다.
김루리
2018.11.08 12:03
서울 양반 자제들의 푸대접과 따돌림이 이만저만 심하지 않았다. 예민한 소년 주시경으로서는 감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음지민
2018.11.08 12:03
주시경의 부모는 본디 황해도 평산군 인산면 차돌개에서 살았다. 그의 아버지 주면석(周冕錫)은 가난하여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면서 훈장노릇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비록 중인 출신이었으나 문필가여서 시문집인 《구암집(龜岩集)》을 남겼다 하니 농촌 지식인이었던 모양이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