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대마루는 복대에 대한 옛 지명이다. 진때마루로 발음하기도 하며, 지금은 복대(福臺)라는 한자 지명을 더 많이 쓴다. 선조때 토정 이지함과 박춘무가 아양산에 올라 복대동 일대를 보니 행주형(行舟形)을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이곳에는 장차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번창하게 될 것이지만 정착하는 사람은 적고 뜨내기가 많을 것을 알았다.
그것은 달리는 배에 짐대(돛)가 없기 때문이며, 행주형 지세에 물이 귀하다는 데 그 원인이 있어 이곳에 번창한 도시가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무쇠로 만든 당간을 세우고 그 곳 마을을 짐대마루라고 불렀다. 그리고 배가 함부로 떠내려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아양산 동쪽 기슭(현지동동)에 쇠대를 박았다. 지금도 그 곳을 '쇠대박이'라고 하는 것은 여기서 연유한다. 남석교남석교는 현재 구석교동 파출소와 동명약국 앞의 땅속에 묻혀 있다. 이 다리는 청주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로 신라 박혁거세 즉위 1년에 건조되었다고는 하나 확인할 수는 없다. 이 다리는 무심천과 함께 애틋한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신라때 어린아이를 둔 젊은 과부가 시주를 하러온 스님에게 어린아이를 맡기고 외나무 다리를 건너 성안으로 장을 보러 갔다. 그러나 스님이 잠깐 조는 사이에 어린아이는 어머니가 건너간 외나무 다리를 건너다 발을 헛디뎌 물에 빠져 죽고 말았다. 장을 보고오다 이 광경을 지켜본 아이 어머니는 아들을 화장하고 중이 되어 아이의 명복을 빌었으며 이 사실을 알게된 대원사 주지스님은 튼튼한 돌다리를 놓았다는데 이 다리가 남석교이다. 무심천남천(무심천의 옛이름)에는 큰 규모의 남석교가 있어 대교천 이라고 불리우기도 했다. 전하는 이야기는 한 선비가 과거를 보러 가다가 청주에 들러 한 여인과 깊은 사랑에 빠졌다고 한다. 그 뒤 이 선비가 과거에 합격하고 돌아가는 길에 들르니 그 여자는 이미 변심하여 있었다. 이를 한탄하여 읊은 시 문구 가운데『무심』이란 말이 있어 무심천의 지명유래가 되었다고도 한다. 쇄내개울'쇠내개울'은 상당산성(上黨山城)에서 발원하여 금천동을 지나 무심천으로 합류하는 하천이다. '시내개울', '금천'(金川), '명암천'(明岩川)이라고도 한다. '쇠내개울'에 대해서는 오래 전부터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 온다.
한양을 향해 길을 떠났던 나그네 한 사람이 쌀안[米院]에서 하룻밤을 묵고 해가 중천에 떠 있을 무렵 청주성 남문 밖 합수머리에서 발을 담그고 여독을 풀고 있었다. 맑고 시원하게 흐르는 잔여울 모래 속에 발을 묻고 앉아 있으려니 오랜 발걸음으로 인한 여독이 한꺼번에 밀어 닥쳐 물에 발을 담근 채 괴나리봇짐을 베고 오수를 즐기게 되었다.
피로에 지친 몸에 덮쳐든 졸음 속에서 나그네는 누렇게 물든 서쪽 하늘에서 까마귀 떼들이 하늘을 덮으며 머리 위를 맴도는 데 기겁을 하고 잠을 깼다. 무척 오래된 잠인 줄 알았으나 실은 담배 한 대 피울 사이밖에 되지 않았다. 나그네는 몹시 불쾌한 듯 고개를 흔들며 발을 물 속에서 빼어 내려고 일어나 앉았다. 물속에 잠긴 두 발 사이에는 곱고 하얀 모래가 엷게 덮여 있었는데, 나그네는 얼핏 양 발 사이에 고여 있는 모래 속에서 둔탁한 황금색 모래가 왕모래에 끼어 고여 있는 것을 발견하고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것은 틀림없는 금이었다. 갑자기 황금을 물속에서 발견한 나그네는 설레는 가슴을 억누르고 근처에 있는 협곡을 파서 적당량의 토사를 함지에 담아 일어 보았다. 그러자 뜻하지 않게도 많은 양의 금이 나왔다. 나그네는 정신없이 사방을 돌아다니면서 몇 군데의 흙을 시세(試洗)해 보니 많은 양의 금이 섞여 있었다.
이렇게 되자 나그네는 한양 가기를 포기하고 이곳에 막장을 친 뒤 덕대(德大)4)를 구해서 금점판(金店販)5)을 이루기 시작했다. 금은 합수머리에서 시작해서 북쪽으로 목암산 호암리 방면의 하천을 중심으로 해서 상당량이 매장되어 있었다. 나그네는 두더지처럼 들과 하천변을 일구었다.
이와 같은 소문은 팔도 각지에 퍼져 많은 덕대들과 금쟁이들이 이곳으로 모여 들었고, 근처 일대에는 객줏방과 술집, 밥집이 늘어서게 되어 일대 성황을 이루게 되었다. 이때부터 합수머리에서 호암리에 이르는 하천을 '금이 나오는 내'라는 뜻으로 '쇠내개울'[金川]이라 불렀다. 소재지 : 충북 청주시 상당구 금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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