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학년 4반

남학생 16명, 여학생 10명

26명의 학생들은 자연을 사랑하고, 친구를 사랑하며

작은 것을 소중하게 여기는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아이들이랍니다.

나를 사랑하고 남을 배려하는 우리
  • 선생님 : 장미영
  • 학생수 : 남 16명 / 여 10명

이정골고개(구중고개)

이름 장미영 등록일 16.08.29 조회수 53
 '구중고개'는 재떨이에서 이정골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이정골고개'라고도 한다.
조선 중엽 광해군 때, 청주 고을에 낙향한 한양 벼슬아치 가운데 호조참판을 지낸 이참판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의 외동딸 운선은 그 집 하인으로 일하는 상백이라는 젊은이에게 연정을 품고 있었으나, 양반이라는 지체 때문에 감히 의중을 전하지 못하고 상사 지경에 빠졌다. 마음의 병이 날이 갈수록 깊어지면서 헤어날 길이 없는 운선 아씨는 마침내 말못할 고뇌를 안고 병석에 몸져 눕게 되었다. 일이 이렇게 되자, 이참판은 의원을 불러 병맥(病脈)을 살피도록 하고 무당 판수를 불러 병마를 쫓도록 굿을 하는 등 병 고치는 데 최선을 다했으나 백약이 무효로 운선의 병은 조금도 회복되지 않았다. 이때 경기도 용인에 명의가 있다는 소식을 들은 이참판은 자초지종을 소상하게 적은 서신을 상백 하인에게 들려 그 명의를 초청하도록 했다. 이와 같은 사실을 안 운선은 동구 밖 성황당 있는 곳에서 상백을 기다리고 있다가 마침내 스스로가 앓고 있는 병세가 다름 아닌 상백으로 인한 상사병이라는 것을 밝히고 함께 도망가서 살자는 뜻을 전했다. 운선 아씨로부터 사연을 고백받은 상백은 크게 놀라서 자기와 같은 미천한 하인 놈하고 그와 같은 생각을 한다는 것은 자신을 양반의 손에 죽도록 만드는 것 외에 아무 성사도 없다고 하며, 그 길로 혼자 도망을 쳐 용바위골 낙가산 기슭에 있는 보살사로 들어가 불가에 귀의하기로 결심했다. 이때에 보살사 주지승 보현 스님은 상백의 뜻이 일시적인 고뇌 탈피를 위한 흥분에서 온 것으로 간파하고 조용히 보름 동안을 객방에 둔 뒤 마음이 변하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끝내 상백의 뜻이 초지일관변함이 없자 마침내 길일을 택하여 삭발을 하고 정각이라는 법명 을 내려주어 수도의 길로 인도했다. 그러던 어느 날 주지스님을 따라 시주를 나온 상백은 공교롭게도 청주성에 들어와 때마침 연연탐색하고 있던 운선 아씨에게 발각되고 말았다. 그토록 병이 되도록 상백을 찾고 있던 운선은 그날 밤 보살사 수행방을 찾아가 상백에게 그 동안 보고 싶었다는 회포를 말하고, 다시 둘만의 생활을 위해서 절을 빠져나갈 것을 간청했다. 상백은 처음엔 불제자가된 몸으로 도저히 그와 같은 짓은 하지 못하겠다고 강경하게 거절을 했으나 운선 아씨의 흐느낌과 호소에 마침내 마음이 변했다. 그리하여 그날 밤 두 남녀는 남몰래 보살사를 빠져 나와 청주성으로 향하던 중 항상 넘나들었던 '이정골고개'에서 잠시 쉬게 되었다. 상백은 속세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그 고갯길을 넘은 지 석 달도 되지 않아서 환속의 몸으로 고갯길을 넘게 되는 자신의 약한 의지를 개탄하면서 운선 아씨에게 앞으로 떳떳하게 살지 못할 바에야 여기서 함께 죽는 것이 나을 것이라며 정사할 것을 제의했다. 그러자 운선 아씨도 서로가 같은 신분이 아닌 이상 도저히 함께 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상백이 하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날 새벽 마을 사람들은 중들이 넘는 고개에서 목을 매고 죽은 젊은 중과 아녀자의 시체를 발견하고 관가에 알림으로써 그들의 신분이 밝혀졌다.이에 보살사 주지 보현 스님은 부끄러움을 금치 못하고 그 고개를 중들이 왕래하지 못하도록 금하였다. 그리하여 옛 중들이 지나던 고개라고 해서 오늘날 그 고개를 '구중고개'라 하고, 새로 넘나드는 길목을 오늘날 '중고개'라 하는데 그 곳이 바로 현재의 용암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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