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학년 1반

배건우 행복한 학급홈페이지(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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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미사변의 대해서

이름 박하얀 등록일 16.03.03 조회수 97

일본에서는 이노우에 대신 무인 출신 미우라를 주한일본공사로 파견하였다. 조선정부는 일본의 강압에 따라 제정한 신제도를 구제도로 복구하고, 일본인 교관이 훈련시킨 2개 대대의 훈련대도 해산하고자 하였다. 이에 대하여 미우라는 명성황후를 시해할 계획을 세우고, 1895년 10월 2일 하수인으로서 한성신보사()에 있는 낭인()을 이용하고자 사장 아다치[]를 공사관으로 불러 6,000원의 거사자금을 주고 명성황후 시해의 전위대로 삼아, 공덕리() 아소정()에 있는 흥선대원군을 궁중으로 호위하는 일을 담당시켰다. 그 외 일본군수비대와 일본인 거류지 담당경찰관 및 친일조선인까지 동원할 계획을 세우고, 훈련대의 우범선()·이두황()·이진호() 등 3대대장과 전 군부협판() 이주회()를 포섭하였다.

한편 정부에서는 군부대신 안경수()를 일본공사관에 보내어 훈련대해산과무장해제, 민영준(駿)의 궁내부대신 임명을 통고하였다. 일본은 상황이 급변함을 직감하고 명성황후 시해계획을 10월 8일 새벽으로 결행하였다. 일본인 자객들은 서대문을 거쳐 우범선·이두황이 지휘한 조선 훈련대와 합류하여 광화문을 통과하였다. 훈련대 연대장 홍계훈()과 군부대신 안경수가 1개 중대의 병력으로, 이들의 대궐 침범을 제지하다 사망하였다. 흉도()들은 궁내부대신 이경직()과 홍계훈을 살해한 다음, 이어서 왕비의 침실인 옥호루()에 난입하여 명성황후를 살해하고, 시신에 석유를 뿌려 불사른 뒤에 묻었다. 

을미사변 결과이미 8월에 민영환()을 주미전권공사(使)로 등용한 동시에, 친일계인 어윤중(김가진() 등을 면직시키고 이범진(이완용() 등의 친러파를 기용하여, 제3차 김홍집내각이 성립되어, 친미·친러세력이 우세하였다.

더구나 주한일본공사 이노우에 가오루[]가 조선정부에 약속한 증여금 300만 원을 일본정부가 제공하지 않자, 조선정계에서는 배일세력이 증가하였다. 이에 일본측은 이노우에 대신 무인 출신 미우라를 주한일본공사로 파견하였다. 조선정부는 일본의 강압에 따라 제정한 신제도를 구제도로 복구하려고, 일본인 교관이 훈련시킨 2개 대대의 훈련대도 해산하고자 하였다.

 

의미---

 

1895년(고종 32) 일본공사 미우라 고로[]가 주동이 되어 명성황후()를 시해하고 일본세력 강화를 획책한 정변

 

흠.냐. 쉽게풀어서 요약하면..

 

일본놈들이 우리가 자기랑 손안잡고 러시아랑 손잡으려 하니까 왕비인 명성황후를 죽인 사건..

 

[네이버 지식백과] 을미사변 [乙未事變]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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