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학년 2반

4학년 2반 

  • 선생님 : 김미경
  • 학생수 : 남 13명 / 여 8명

최현준 신규식빌표자료

이름 조태형 등록일 19.05.24 조회수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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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 을사늑약이 강제로 체결되자 육군참위()로서 지방군대와 연계, 대일()항전을 계획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13도 유생들이 조약 철회를 상소하고, 장지연()은 황성신문에 피를 토하듯 ‘시일야방성대곡( )’을 썼다. 민영환(), 조병세(), 홍만식() 등은 자결했다. 민심이 가마솥 끓듯 펄펄 끓을 때였다. 청년장교 신규식은 계동.가회동.운니동 등의 솟을 대문들을 골라 몽둥이로 후려치며 미친 듯 소리 질렀다.

신규식과 엄주동 사진(1917). 엄주동(왼쪽)은 조선산직장려계를 조직 활동하였고, 청산리전투에도 참여하였다. 1921년 상해로 가서 신규식의 휘하에서 활동하였다.

“을사오적들은 나오너라!”
신규식은 호랑이라도 잡을 듯 거리를 쏘다녔지만 역부족이었다. 운니동 집으로 돌아왔을 때 그는 자신이 한낱 미약한 존재였음을 확인했을 뿐이다. 사흘을 문 걸어 잠그고 굶었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민영환 등의 순국은 소극적 행동이 아니라 적극적 투쟁의 하나라고 생각했다.

“죽음은 거름의 역할을 하는 것. 내 한 몸 거름이 되어 무수한 열매를 맺을 수 있다면 여한이 없겠다.”(26살 신규식의 이 같은 생각은 그러나 후일 ‘치욕을 알면 피로써 죽음을 할 수 있고, 치욕을 씻으려면 피로써 씻어야 한다’는 투쟁적 신념으로 바뀐다.)

신규식은 독약을 마셨으나 문을 부수고 들어온 가족들에 의해 겨우 목숨을 구했다. 그러나 약 기운이 번진 오른쪽 눈은 시신경을 다쳐 애꾸가 되었다. 거울을 들여다 본 신규식은 냉소를 지었다.

“애꾸, 그렇다. 이 애꾸눈으로 왜놈들을 흘겨보기로 하자. 어찌 나 한 사람만의 상처이겠는가. 우리 민족의 비극적 상징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신규식 [申圭植] - 임정외교의 길을 열다 (독립운동가, 이달의 독립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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