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여성들의 생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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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강민경 | 등록일 | 18.03.23 | 조회수 | 31 |
신사임당 신사임당은 쓴 시는 이이의 〈선비행장〉에 〈유대관령망친정(踰大關嶺望親庭)〉, 〈사친(思親)〉, 〈낙구(落句)〉 세 작품이 수록되어 전해진다. 칠언(七言)과 오언(五言)의 한시(漢詩)인 이 작품들은 모두 부모에 대한 그리움과 걱정을 나타내고 있는데, 격조를 갖추어 그러한 감정을 섬세하게 잘 표현하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신사임당 [申師任堂] (두산백과) 허난설현. [출처] 한국의 여성상 논개, 신사임당, 유관순, 허난설현|작성자 다믄이 박만성 김만덕. 만덕은 가난한 집에 태어나 12살에 부모님이 모두 사망하여 기생의 몸종으로 의탁하였고 , 다시 기생의 수양딸이 되어 가무를 익혀 제주도에서 한때 가장 유명한 기생으로 살았다 . 가난한 집안 출신에다 전직 기생이었던 독신녀를, 여성에게 엄중했던 유학을 익힌 사대부들이 앞다투어 칭송하며 전국적인 화제의 인물이 된 것은, 만덕이 객주를 운영하면서 제주도 물품과 육지 물품을 교역하는 유통업을 통해 막대한 부를 이루었고, 그 부를 계속되는 기근에 시달리는 제주도민을 살려내는데 쾌척하였던 것에서 비롯되었다.
정조시대 제주도민들이 계속되는 재해로 기근에 시달리고 있었으나 조정에서 보낸 구휼미가 풍랑에 침몰하는 불상사까지 겹쳐 아사의 위기에 처하자, 만덕은 유통업으로 모은 자신의 전 재산을 털어 육지에서 쌀을 구입하여 제주민들을 살려내었다. 당시 만덕의 인기는 남성들만 활개치는 세상에서 여자가 홀로 많은 재산을 형성하는 비상한 재주를 가졌던 것과, 어떤 남성보다 많은 양의 곡식(쌀 500섬)을 다른 사람들을 위해 쾌척한 것에 대한 놀라움 때문이었다. 뛰어난 기업가이자 자신의 재산을 사회에 환원한 자선사업가로도 오늘 우리가 충분히 만덕을 기릴만하다. 그러나 만덕을 오늘날 다시 생각하는 것은 엄중한 유교 규범이 여성을 옥죄고 있던 시기에 시대와 불화하지 않고 당시 여성에게 지워진 한계를 거침없이 뛰어 넘었던 용기를 만덕이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는 가족으로부터 버림받았고 기생으로 성공했으나 가족의 명성을 더럽힌다는 질책 때문에 기적(妓籍)에서 빠져 나왔고, 가족을 원망하지 않고 기근에 처한 가족을 구함으로써 가족과 화해하였다. 또한 결혼을 하지 않은 독신녀로 유교 사회에서 주변부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으나, 이에 굴하지 않고 당시 활발해진 해상을 이용한 유통업에 눈을떠 여성기업인으로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 나갔던 창의적인 개척자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김만덕 [金萬德] - 시대와 불화하지 않으면서 시대를 뛰어넘은 여성 기업인 (인물한국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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