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학년 4반

생각은 바르게! 마음은 따뜻하게! 5학년 4반
원봉 5-4
  • 선생님 : 오재연
  • 학생수 : 남 0명 / 여 0명

6모둠

이름 김남호 등록일 17.09.13 조회수 12
무심천

무심천

'무심천'은 청주를 동과 서로 가르며 남에서 북으로 흐르는 하천이다. 무심천 서쪽 지역이 개발되기 전에는 청주를 에워싼 채 흘렀다. 양펑천, 월운천, 영운천, 명암천, 율량천, 발산천 등의 작은 내를 거느리고 있다. 무심천 동쪽에 우뚝 선 '우암산'과 함께 청주를 대표하는 자연물이다.


이 중에서도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동국여지승람과 대동여지도에는 현재의 무심천을 대교천(大橋川)으로 기록하고 있다. “대교천은 청주 고을 남쪽에 있는데 근원은 적현(赤峴)에서 나와 오근진(梧根津)으로 흘러간다” 여기서 언급한 ‘대교’란 ‘큰 다리’란 뜻으로, 현재 육거리 시장 근처 땅속에 묻혀있는 남석교(南石橋)를 가리킨다. 이점으로 보아 구한말까지 무심천의 공식명칭은 ‘대교천’이었다는 것이 통설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일반적 견해를 통째로 뒤집어 놓은 결정적 자료가 지난 1998년에 발견되었는데, 조선시대 고문헌에 전혀 등장하지 않던 '무심천' 지명이 느닷없이 옛 지도에 등장했던 것이다.


이로 보면 내의 이름이 일제 초기부터 '무심천' 으로 불리웠다는 통설과 달리, 적어도 2백년 이전부터 '무심천'으로 불리웠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18세기 후반에 이처럼 표기해 놓았으므로 어쩌면 수백년 전부터 '무심천'으로 불리웠을지도 모를 일이다.
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된 대교천은 현재 꽃다리 일대에 해당되는데, 무심천 중심 물줄기와 금천동에서 내려오는 쇠내(金川)지류가 합쳐지는 꽃다리 일대를 대교천이라 부르고, 하류는 무심천으로 부르다가 구한말부터는 그냥 '무심천'으로 통용 한 듯 하다.

이처럼 무심천은 무심할 정도로 주변의 문전옥답을 순식간에 쓸고 지나가니, 하늘도 무심하다 하여 '무심천'이 됐다는 얘기가 있으나 뚜렷한 근거는 없다. 무심천 이름의 보다 직접적인 근거는 고려중기의 고승, 진각국사(眞覺國師), 혜심(慧諶:1178~1234)의 사상과 행적에서 찾아볼 수 있다. 지눌(知訥)에 이어 선종(禪宗)의 법맥을 이은 혜심은 한때 무심천변 사뇌사에서 여름 수련회격인 하안거(夏安居)를 하였는데, 그가 바로 유명한 ‘무심론자’였다는 점을 눈 여겨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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