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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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천수연 | 등록일 | 16.11.16 | 조회수 | 45 |
동명성왕(東明聖王) 또는 추모왕(鄒牟王, 기원전 58년 ~ 기원전 19년 음력 9월)은 고구려의 개국 시조이자 초대 군주(재위: 기원전 37년 ~ 기원전 19년)이다. ≪국사 國史≫ 고구려본기를 인용한 ≪삼국유사≫ 및 ≪삼국사기≫에는 성이 고씨, 이름은 주몽이라 하였다. 또한, ≪삼국사기≫에는 ‘추모(鄒牟)’ 또는 ‘상해(象解)’라는 이름도 전하고 있다. 휘는 주몽(朱蒙)으로, 추모(鄒牟), 중모(中牟), 중해(衆解), 상해(象解), 도모(都牟), 도모(都慕)라고 한다. 부여의 건국자인 동명과 주몽은 별개 인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부여의 금와왕 재위 시 금와왕의 아들 대소에 의해 핍박받던 주몽은 박해를 피해 남으로 내려와 고구려를 건국하였다.
3. 고구려의 건국과 발전 부여에서 자란 주몽은 총명하고 활을 잘 쏘아 촉망을 받던 중 대소(帶素) 등 금와왕의 일곱 왕자가 그 재주를 시기하여 죽이려고 하자 화를 피하여 이주하였다.
대소의 위협에서 무사히 벗어난 주몽은 유유히 남쪽으로 향하여 마침내 동명성왕이 졸본에 정착하여 졸본 부여왕(이름 미상, 건국 설화 중에 다른 설화에는 연타발이라고 되어 있다)의 둘째 딸(이름 미상, 건국 설화 중에 다른 설화에는 소서노라고 되어 있다)과 결혼하여 점차 세력을 확장하기 시작한다.
기원전 37년, 주몽은 졸본 부여왕의 뒤를 이어 고구려를 건국하고, 자신의 성(姓)을 ‘고’(高)라 했다. 그리고 국가의 위상을 일신하기 위해 대대적인 영토확장 전쟁을 벌이기 시작했다.[3] 주몽은 영토확장을 위해서는 우선 변방을 안정시킬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고 변방에 살고 있던 말갈족의 부락을 평정하여 말갈족이 더이상 국경을 넘보지 못하도록 하였다. 또한 기원전 36년에는 비류수 상류에 있던 비류국(沸流國, ‘송양국’이라고도 한다)의 왕 송양(松讓)에게 활쏘기 경쟁으로 이겨서 항복을 받아내어 ‘옛 땅을 회복했다.’라는 뜻의 고구려말인 다물(多勿)로 개칭하고, 송양을 그곳의 도주로 삼았다.
비류국을 정복한 주몽은 기원전 34년 마침내 졸본성과 궁궐을 완성하여 나라의 위상을 한층 높였다. 기원전 32년에는 오이(烏伊)와 부분노(扶芬奴)를 보내 태백산(백두산) 동남쪽에 있던 행인국(荇人國)을 정복하였으며, 기원전 28년에는 부위염을 보내 북옥저를 정복하였다.
기원전 24년 가을 음력 8월에 부여에 남아있던 주몽의 어머니 유화부인이 죽었다. 이때 금와왕이 그녀를 태후의 의례로써 장사지내고 신묘를 세웠다. 이에 주몽은 부여에 사신을 보내 자신의 어머니 장례를 성대하게 치루어준 것에 대해 감사를 표하고 토산물을 보냈다. 하지만 금와왕이 붕어하고 그의 맏아들이었던 대소왕자가 왕위에 오르면서(기원전 19년 전후) 고구려와 부여의 관계는 이전과 달리 급속도로 악화된다.
기원전 19년 여름 음력 4월에 주몽의 아들 유리가 부여에서 어머니 예씨 부인과 함께 도망쳐 돌아오자 주몽은 기뻐하며 그를 태자로 삼았으며, 그 후 5개월 뒤에 40살의 나이에 사망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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