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을 읽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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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사재의 | 등록일 | 16.10.19 | 조회수 | 55 |
이순신 장군은 인조 임금이 다스리던 1545년 4월 28일 한성의 삼촌 건천동에서3째 아들로 태어났다. 어릴때 이순신 장군은 동내 아이들을 모두 불러모아서 전쟁놀이를 하였다. 어느날은 어떤 아저씨가 다리를 건너가야하는데 전쟁놀이 중이라며 그 다리를 못 건너가게 할 정도로 엄하게 지켰다. 그 아저씨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이 아이는 다 크면 훌륭한 장군이 되겠군.' 그가(이순신 장군이) 28세가 되던 1572년8월 훈련원에서 무과 시험이 있었다 이순신 장군은 꼭 장원 급제를 하기바랬다. 그런데 아버지가 연줄이 없었다. 하지만 이순신은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시험을 치렀다. 활쏘기,창쓰기,칼쓰기등 여러가지를 하였다. 그다음 북소리와 함께 말타기시험이 시작되었다. 얼마지나자.이순신 장군이 말에서 떨어졌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옆에 버드나무나뭇가지를 꺽어서 줄기를 벗긴뒤 상처를 나타난 곳에 묶어서 다름없이 채찍질을 하였다. 사람들은 이순신 장군에 모습의 감탄을 하였다. 하지만 이순신 장군은 말에서 떨어져서 장원 급제를 하지 못했다. 그래도 아순신 장군은 다음에 꼭 급제를 하기를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이순신 장군은 첫번째 맡은 벼슬의 자리는 임기3년 이었다. 이순신 장군은 그 임기 3년 동안에 열심히 근무 하면서 국방 경비를 보고 연구 해냈으므로 군인으로서의 귀중한 경험을 하였다.임기3년을 을 마치자 다시 한성으로 돌아갔다. 어느날 이순신 장군이 좌천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사람들은 수근수근 거렸다.이듬해인1580년7월 그의 나이 36살에 조그만한 수비대장이 되었다. 그는 비로소 자신의 책임으로 한 부대를 지휘하는 기회를 얻은것 이다. 하루는 전라좌수사인 성박이 이순신의 진영에 신부름꾼을 보냈다. 신부름꾼은 오동나물를 베어오라는 분부를 받고온 것이다. 하지만 이순신은 "이 오동나무는 나라의 것"이라고해서 신부름꾼을 돌려보냈다. 좌수사는 이순신을 불러 주리를 틀고싶었지만 할수 없었다. 왜냐하면 이순신은 죄가 없기 때문이다. 첫번째싸움에서 수군이 이겨서 사기는 가져왔다. 두번째 싸움이 당포대전에서 거북선도 출동시켰다. 일단 약 4~6대를 보내고 깁숙한 곳으로 유안을 하고 학익진 모양으로 싸우다가 시순신 장군이 화살의 맞아서 돌아가섰지만 나으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고해서 결국 전쟁에서는 이겼지만 이순신 장군님은 돌아가셨다. 나는 이순신 장군님의 모습을 본받고 싶다. 왜냐하면 이순신 장군님은 우리나라를 지켜주셨고 병사들의 사기가 떨어질까봐 나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고 하시고는 나라를 위해서 돌아가셨지 때문이다. 나는 겁이나서 도망가고 싶을 것 같은데 용기 있는 모습이 너무 멋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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