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배려가 넘치는 6학년 7반입니다.
자신을 사랑하고 상대를 배려하며 존중하는 마음을 가진 우리반!
서로에 대한 우정과 사랑이 가득한 우리반을 만들기 위해 노력합니다^^
정약용에 대하여(따단) |
|||||
---|---|---|---|---|---|
이름 | 김우혁 | 등록일 | 18.05.02 | 조회수 | 21 |
책의 종말이 공공연하게 선포되는 시대다. 하지만 끊임없이 무언가 읽고 쓰려는 인간의 욕망이 사라지지 않는 한 책은 어떤 형태로든 살아남아 우리의 삶을 자극할 것이다. 4월 23일은 세계 책의 날이다. 한 해 유일하게 책을 위해 생긴 날을 맞이해, 그 누구보다 책을 사랑했던 사람, 정약용의 소년 시절을 적어본다.폐족(廢族)이 글을 읽지 않고 몸을 바르게 행하지 않는다면 어찌 사람 구실을 하겠느냐. 폐족이라 벼슬은 못하지만 글을 읽는다면 성인이 되지 못하겠느냐, 문장가가 못 되겠느냐. 이른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책을 읽어 이 아비의 간절한 소망을 저버리지 말아다오. 다산 정약용이 유배지에서 두 아들 학연과 학유에게 보낸 편지다. 정약용은 인생의 황금기라고 할 수 있는 30대 후반에서 50대 중반까지 18년이라는 긴 세월을 유배지에서 보냈다. 그 기나긴 고독과 회한의 시간 동안 그를 지켜준 것은 책이었다. 그는 읽고 쓰는 것으로 한 세월을 이겨냈고, 대학자가 됐다. 정약용은 어린 시절부터 책에 빠져 살았다. 황현의 《매천야록》에는 다산에 관해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실학 4대가 중 한 명이었던 이서구가 영평(지금의 포천)에서 대궐로 돌아가다 한 소년을 만난다. 소년은 당나귀에 책을 가득 싣고 북한사로 들어가고 있었다. 그로부터 열흘이 지나 이서구는 소년을 다시 만난다. 소년은 북한사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너는 어디를 돌아다니느냐?” 깜짝 놀란 이서구는 실제로 책을 외웠는지 시험을 해보았다. 소년의 말은 사실이었다. 이 소년이 바로 정약용이다. 다산 정약용은 출중한 실력과 인격을 겸비하고 있었지만 정치적으로는 매우 불우했다. 1762년 경기도 광주군에서 태어난 다산은 10세 때 자신이 쓴 한시를 모아 《삼미집(三眉集)》이라는 책을 냈을 정도로 천재적이었다. 1783년 문과 회시에 합격하고 1785년 성균관에 입학한 다산은 정조와의 운명적으로 만나게 된다. 학문에 관심이 많았던 정조가 성균관에 “중용 강의 80조에 답하라”는 명을 내렸는데, 정약용의 답변을 읽어본 정조가 “정모(丁某)의 경지가 대단하다. 훗날 반드시 명성을 떨칠 것”이라며 극찬한 것이다. 벼슬길에 들어선 정약용은 서학에 관심을 갖게 되고 이로 인해 정치 인생은 가시밭길을 걷는다. 당시 남인과 서인의 대립이 심했는데 서인들은 끊임없이 천주교 신자라는 이유로 다산을 모함했다. 여러 차례 위기가 있었지만 정조가 번번이 그를 보호했다. 하지만 1800년 정조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뜨면서 다산의 고난은 시작됐다. 1801년 이른바 황사영 백서 사건에서 촉발된 신유박해 때 전남 강진으로 유배를 떠나게 된다. 다산의 유배 생활은 개인적으로는 큰 불행이었지만 역설적이게도 그가 대학자로 거듭나는 계기가 된다. 저서 500여 권 중 상당수가 이 시기에 쓰였거나 초안이 마련된 것들이었다. 이 시기에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는 이런 내용도 있다. 세상을 구했던 책들을 즐겨 읽어라. 이 문장 하나에서 준엄한 지식인이자 속정 깊은 아버지였던 그의 면모를 본다. ![]()
|
이전글 | 사진 |
---|---|
다음글 | 사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