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 금동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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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김응선 | 등록일 | 17.09.14 | 조회수 | 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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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0년 잠에서 깨어난 대가야의 꿈 지산동 고분군은 병풍을 둘러놓은 것처럼 고령읍을 감싸고 있는 주산(主山)의 능선을 따라 무덤이 만들어진 대가야의 대표적인 유적입니다. 대가야의 왕도였던 고령읍을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에 거대한 봉토분을 비롯하여 크고 작은 200여기의 무덤이 분포하고 있습니다. 1978년, 지산동 고분군에 대한 발굴조사를 진행하던 중 32호 무덤의 토기 위에 푸른색의 녹이 덮이고 여러 조각으로 깨어진 금속유물이 확인되었습니다. 많이 부식되고 부서져 녹슨 금속조각처럼 보였을지 모르지만, 이것이 정식발굴조사로 확인한 최초의 가야 금동관이었습니다. 몇 달간의 발굴이 끝나고 그보다 더 오랜 기간과 어려운 보존처리 작업을 통해 녹슬고 깨어졌던 가야의 관은 어느 정도 원래의 모습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고령 지산동 32호무덤에서 출토된 금동관은 표면에만 도금이 되어 있습니다. 형태를 살펴보면, 띠모양 관테에 세움장식은 하나만 부착되어 있습니다. 윗부분에 연꽃봉오리(또는 보주형)로 장식한 광배(光背)모양의 금동판 좌우에 꺾인 가지모양의 작은 세움장식을 못으로 고정한 형태로, 작은 세움장식의 끝부분도 작은 연꽃봉오리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세움장식과 관테의 가장자리는 연속점무늬와 물결무늬를 표현하고 사이 사이에 대롱모양의 무늬를 찍었습니다. 그리고 세움장식의 중앙은 연속점무늬와 물결무늬 등으로 X자를 그리고 다시 수평선을 그어 모양으로 디자인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각 선의 교차는 황금분할의 비(比)를 이루어 단조로움을 깨고 선과 면의 대칭미를 극대화 하고 있습니다. 관 앞쪽에 넓은 판으로된 세움장식을 한 것은 황남대총 남분의 은관이 있습니다. 기본적인 형태와 만들어진 시기가 비슷하여 유사점이 거론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만든 재료에 있어 은과 금동으로 차이가 있습니다. 그리고 황남대총 은관과 달리 새깃털모양의 세움장식이 없으며 세움장식이 형태의 디자인이 있습니다. 또, 관테 앞부분이 곡선이 아니라 일직선을 이루고, 관테와 세움장식이 따로 제작되어 못으로 고정된 차이가 있습니다. 세움장식이 산(山)자형과 유사하여 신라의 나뭇가지모양 세움장식과 비슷한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분명 신라의 전형적인 세움장식과 달리 풀과 꽃모양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가야관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대가야 최고 권력자를 위해 만들어진 이 금동관은 오랜 세월 어두운 땅속에서 녹슬고 부서져 그 화려한 빛을 서서히 잃어갈 즈음 세상에 드러났습니다. 1,500년 전 그때처럼 반짝이지 않을지는 모르지만 대가야의 화려한 문화와 세련된 미적 감각, 뛰어난 금속공예기술을 보여주기에는 부족함이 없을 것입니다. 전시실에서 이 금동관을 보고 있노라면 신라, 백제와 힘을 겨루면서 키웠던 대가야의 웅대한 꿈, 강력했던 대가야 왕의 권위가 느껴지는 듯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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