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수 대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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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김지건 | 등록일 | 18.11.08 | 조회수 | 47 |
612년수나라는 두 번째의 고구려침공을 개시하였다. 이때도 첫 번째 침공 때와 마찬가지로 수륙양로를 통해 쳐들어왔다. 먼저 수나라 육군은 일단 탁군(涿郡 : 지금의 北京)에 집결, 좌우 각각 12군으로 편성해 고구려를 향해 진군하였다. 동원된 병력은 모두 113만 3800명, 군량운반자의 수는 정규군의 배가 되었으며, 군대를 출발시키는 데도 40일이 소요되었다. 고구려군의 완강한 저항으로 막대한 희생을 치르면서 겨우 요하 도하작전에 성공한 수군은 곧 요동성(遼東城)을 포위, 공격했으나, 고구려의 완강한 저항과 지휘계통의 혼란 등으로 지구전으로 돌입하게 되었다. 이에 수나라는 우중문(于仲文)·우문술(宇文述) 등을 지휘관으로 한 30만5천명의 별동대를 편성해 오골성(烏骨城 : 지금의 봉황성)을 경유, 압록강을 건너 고구려의 국도인 평양성으로 직공(直攻)해 대세를 결정지으려 하였다. 별동대는 고구려군의 게릴라전술에 고전하면서 겨우 평양성 30리 지점에까지 진군하였다. 그러나 수나라 지휘부 내부의 불화, 병사들이 지급받은 개인장비 및 군수품이 과중해 중도에서 몰래 버림에 따른 물자부족 등으로 수군은 더 이상의 진군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이러한 약점은 압록강을 건너기도 전에 고구려 주장(主將) 을지문덕(乙支文德)에게 간파당하였다. 이에 고구려는 그들을 고구려 깊숙이 유도해 그들의 능력을 한계점에 도달하게 한 뒤, 거짓항복을 청해 퇴각할 구실을 만들어주는 척하면서 일대추격전을 전개하였다. 특히, 퇴각하는 수군이 살수를 건너고 있을 때 이들을 배후에서 공격해 수나라 장수 신세웅(辛世雄)이 전사하는 등 대대적인 전과를 올려 요동성까지 살아간 병력은 겨우 2,700명에 불과했다고 한다. 한편, 수나라 해군은 바다를 건너 패수(浿水 : 지금의 대동강)를 거슬러 올라가 평양성을 공격하려 했으나, 왕제(王弟) 고건무(高建武)가 지휘하는 고구려 결사대에 의해 막대한 피해를 입고, 거기에다가 육군의 참패로 전의를 상실하고 후퇴하였다. 이처럼 수륙양면에서 막대한 손실을 입은 수는 요동성 공격을 중단하고 총퇴각함으로써 두 번째 침략도 실패로 끝났다. [네이버 지식백과] 살수대첩 [薩水大捷]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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