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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문화재 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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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신하나 | 등록일 | 16.11.30 | 조회수 | 387 |
첨부파일 | |||||
경천사 십층석탑(재건 전의 모습) 서울 종로구 세종로 경복궁. 국보 제86호. 일제강점기에 일본인이 반출한 것을 되돌려 받아 1960년 경복궁에 옮겨 세운 것이며, 고려 충목왕 4년 (1348)에 세웠다는 기록이 있으며 탑골공원에 있는 원각사지십층석탑은 이 탑을 본떠 만든 것이다. 출처 : 이미지월드 고려시대의 미술은 약 9세기 동안 지속되었던 문화의 중심지가 경주에서 개성(開城)으로 옮겨짐으로써 쇠퇴하고 있던 10세기의 한국미술에 새로운 북방적 힘을 불어넣는 계기가 되었는데, 이런 르네상스적 현상은 조각에서 가장 뚜렷하다. 10~11세기에 걸쳐 커다란 철불(鐵佛)이 많이 만들어져, 그 중에는 석굴암의 본존(本尊)을 본뜬 것도 있고 신라 말의 무기력한 조각과는 달리 고려 초기의 불상은 희열에 넘친 웃음으로 가득차고 기다랗게 째진 눈, 날카로운 코 등에서 청신한 힘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위축되고 경직된 데다가 송(宋)나라와 원(元)나라 조각의 장식성을 곁들이면서 타락된 모습은 조선시대로 이어지나, 신라의 땅 안동(安東)에서 발견된 목제 가면의 일군(一群)과 백제의 땅에서 전통을 이어받아 인체(人體)의 유연성을 암시하는 소석불(小石佛) ·소불(塑佛)은 이채를 띠고 있다. 목조건축(木造建築)은 중국계의 고식소조양식(古式疎組樣式)이 채용되어 특수한 공포(?包)가 사용되고, 14세기에는 장식적인 힐조양식(詰組樣式)이 들어온다.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고려목조 건축은 안동(安東)에 있는 봉정사 극락전(鳳停寺極樂殿), 영풍(榮豊)의 부석사무량수전(浮石寺無量壽殿), 예산(禮山)의 수덕사대웅전(修德寺大雄殿) 등인데 극락전은 13세기의 건물이다. 석탑은 신라탑에 비하여 고준(高峻)해지고 옥개석(屋蓋石)도 두꺼워져 신라의 세련미가 상실되었으나, 묘탑(墓塔)에는 11세기적인 섬세함을 나타낸 작품도 많다. 회화는 한두 점의 고분벽화 외에 외국에 전해지고 있는 몇 점만 남아 있을 뿐이다. 공예 중 동제(銅製)의 범종(梵鐘)은 초기의 흥천사종(興天寺鐘) 등 충실한 방고작품(倣古作品)도 있으나, 점차 형식과 기술이 타락하여 중기 이후에는 짤막한 소형종(小形鐘)이 유행하였다. 형식도 신라종과는 달리 상대(上帶) 또는 견대(肩帶) 위쪽에 화형식대(花形飾帶)가 도드라지고, 부조(浮彫)된 비천은 선각(線刻)의 불상으로 바뀌었다. 청자(靑瓷)는 웨저우요계[越州窯系]의 영향 아래 10세기 말경부터 전북의 부안군(扶安郡) 보안면과 전남의 강진군(康津郡) 대구면(大口面) 방면에 발달하여 고려청자의 제1기(1010∼1150)로 들어간다. 이 시기에는 비색(翡色)이라 불리는 독특한 청록색 유기(釉器)가 만들어졌으며, 각문(刻文)을 시문한 것도 있으나 무문(無文)의 것도 많고, 유색(釉色) ·형태가 아울러 정교한 청자가 생산되었다. 제2기(1150∼1250)에는 바탕색 그 자체는 쇠퇴하고 구름 ·학 ·버들 등의 문양상감청자로써 특징지어지고 있다. 제3기(1250∼1392)는 쇠퇴기로서 상감청자 외에 회청자(灰靑瓷)도 많이 생산되었지만 청자의 색은 칙칙해지거나 갈색(褐色)을 띠게 되고 형태 ·기법 또한 말기적 양상을 드러냈으며 청자 외에 백자 ·철사유(鐵砂釉) 등도 만들어졌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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