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학년 1반

안녕하세요. 여러분! 항상 건강하고 밝은 우리반 학생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반짝이지 않는 별은 없다.
  • 선생님 : 홍석정
  • 학생수 : 남 10명 / 여 7명

장영실

이름 김강이 등록일 16.04.04 조회수 89

“영실의 사람됨이 비단 공교한 솜씨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성질이 똑똑하기가 보통보다 뛰어나서, 매일 강무()할 때에는 나의 곁에 두고 내시를 대신하여 명령을 전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어찌 이것을 공이라고 하겠는가. 이제 자격궁루()를 만들었는데 비록 나의 가르침을 받아서 하였지마는, 만약 이 사람이 아니었다면 결코 만들어 내지 못했을 것이다.”-세종대왕-

장영실 이미지 1

장영실

장영실은 기생의 아들로 태어나 동래현의 관아에서 일하던 노비였다. 어려서부터 손재주가 뛰어났던 그는 1423년 세종의 부름을 받아 궁중의 기술자인 상의원 별좌가 되면서 노비의 신분을 벗어나게 되었다.

1432년 경복궁과 서문관에 설치할 천문을 관측하는 기구를 제작할 때 이천을 도와 간의와 혼천의를 만들었다. 1434년에는 한국 최초의 자동 물시계인 자격루를 만들었고, 구리 활자의 결함을 보완하여 금속 활자인 갑인자의 제작을 지휘ㆍ감독했다.

1437년부터 6년 동안 별의 움직임을 관측하는 간의를 완성했고, 휴대용 해시계인 현주일구와 천평일구를 만들었다. 또 해시계인 정남일구와 앙부일구, 밤과 낮 모두 쓸 수 있는 시계인 일성정시의도 만들었다. 1438년에는 자격루와 같은 물시계인 옥루를 만들었으며, 같은 해 경상도 채방별감이 되어 구리와 철을 캐내고 연마하는 일을 감독했다.

장영실은 1441년 세계 최초의 우량계인 측우기를 서양보다 200년이나 앞서 만들었다. 또 하천의 범람을 미리 알 수 있게 해 주는 수표를 발명하여 벼슬이 상호군에 올랐다. 그러나 이듬해 그가 지휘하여 만든 왕의 가마가 행차 도중 부서져 불경죄로 의금부에 잡혀가 벼슬에서 쫓겨났다.

 

-조선시대에 물시계를 경루라고 하였다. 1398년(태조 7)에 종루 근처에 금루방이라는 관청을 두었는데, 금루방에는 물시계인 경루가 설치되어 있었다. 물시계는 밤낮 없이 시간을 알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지만, 항상 사람이 지키고 봐야 했기 때문에 매우 불편했다. 결국 세종대에 이르러 물의 부력과 낙하하는 공의 에너지를 이용하여 저절로 소리를 내게 하여 시간을 알리는 자동물시계인 ‘자격루’가 장영실에 의해 만들어졌다. 1434년의 일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장영실, 자격루를 만들다 - 자동 물시계, 자격루 (장영실 테마관, 네이버)

당시 사람들은 장영실을 가리켜 “과학을 위해 태어난 인물”이라 칭송하였다.

혼천의

일명 혼의()·혼의기()·선기옥형()이라고도 한다. 고대 중국의 우주관인 혼천설()에 기초를 두어 서기전 2세기경에 처음 만들어졌다.

우리 나라에서는 확실한 자료는 없으나, 삼국시대 후기에서 통일신라시대와 고려시대에 만들어 사용하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기록에 나타난 바로는 1432년(세종 14) 예문관제학 정인지(), 대제학 정초() 등이 왕명을 받아 고전을 조사하고, 중추원사 이천(), 호군 장영실() 등이 1433년 6월에 최초로 제작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혼천의 [渾天儀]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천체의 운행과 그 위치를 측정하던 천문관측기.

 

별을 관찰하는 장영실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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