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학년 5반

세상의 빛들과 함께하는 따뜻한 이야기가 있는 반 

너희들은 세상의 빛이라
  • 선생님 : 박정재
  • 학생수 : 남 15명 / 여 11명

선생님의 일기

이름 박정재 등록일 19.05.23 조회수 89

 <선생님의 일기>

어릴 적 아버지 차를 타고 시골을 내려가던 차창 밖이 이따금씩 기억이 난다.
그 때는 지금처럼 서로의 정체성을 밖으로 드러내는 것에 익숙지 않은 시기인데다
서툼과 설레임을 대변하는 ‘초보운전’ 스티커도 다양하지 않아
자동차에 무엇을 한다는 건 큰 모험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 시절 어린 나에게 유독 눈에 띄던 스티커가 있었다.
 
차 뒷편 파란색 바탕에 하얀 각이 진 글씨로 쓰여 있던
‘내 탓이오’
이 모든 도로의 정체의 원인과
연식이 오래된 기계의 끌럭임은
모두 내 탓이오 라고 고백하고 있는 듯한 단정한 글씨. 

지금의 초보운전 같은 표시 쯤이라고 생각했던 그 때의 난,
뜻도 모르고 내 탓이오 내 탓이오 흥얼거렸던 기억이 난다.
 
주말 내내 마음이 서걱거렸다.
 
금요일 오전 출장을 마치고 돌아가던 길.
옆 반 선생님의 전화가 울린다. 좋은 징조는 아니다. 아니나 다를까
 
나의 부재를 증명하듯, 다그치며 이야기 했던 것들을 가볍게 잊은 아이들은
기어코 서로에게 생채기를 내고 말았다.
피칠갑을 한 그들이 휘갈겨 쓴 글에는 저마다의 분노와 원망을 쏟아 내고 있었다.
 
점심시간에 이어진 동학년 선생님들의 걱정하는 눈빛들.
그 모든 것이 부끄러웠고 모멸감이 들어 바늘조차 들어가지 못할 정도로 마음이 좁아졌다.
그래서였을까.
5교시에 만난 아이들에게 서슬 퍼런 마음은 미운 말들로,
배우지 못한 이들에겐 종주먹질을 하며 분통을 터뜨리고 말았다.

아이들을 그렇게 보내고 난 뒤,
맥이 빠져 의자에 몸을 구겨 일그러진 교실 속에서 난,
진원점이 어디일까를 생각하며 이마에 손을 대며 휘청였다.
얼마쯤 지났을까
 
“선생님....”
 
팽팽한 공기를 뚫고 가만 목소리가 들어온다.
 
“저희 가볼게요”

조그맣게 울리는 소리에 눈을 떠보니
우두커니 놀란 토끼처럼 서 있는 아이들을 배경으로
깨끗하게 정돈된 교실이 눈에 띄었다.
 
아마 내가 했던 말들이 신경쓰였으리라
차마 어그러진 교실을 두고 지나치지 못했으리라
소리나지 않게 교실을 조금씩 정리해 나갔을 아이들을 보니
 
그만 내가 미워졌다.내 탓이라 말하지 못하고 네 탓을 하며, 
똑같은 어른이 되어가는 내가 미워졌다.
 
실은 이 모든 것들이 나의 잘못에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한
나에게 해대는 말이었다는 것.
잘못은 그들에게 있지 않고 나에게 있다. 
그렇게 어른인 나도,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헤매는데 13살 어린아이들에게 난 무엇을 바랐던 것이었는지.
 
싸우고 다투고 서로 마음 아프게 할 줄 뻔히 알면서
기어코 미운 말을 내뱉고는 후회하고, 원망하고,
다시는 안 볼듯이 그렇게 매정하게 돌아서고
다른 사람 마음에 꼭 상처를 내고야 마는...
수많은 어른들, 자리를 가득 매웠던 한숨소리...
정말 당장이라도 죽을듯이, 일그러진 표정들. 그 때 썼던 마음들.
톡.톡.튀는 탄산이 가득한 콜라에
씩.씩.냉기를 내뿜는 흰 얼음을 떨어뜨렸을 때
쫘.악.갈라지는 시원한 느낌.
 
그 때 난 깨달았는지 모른다. 내가 너무 모르고 있었구나.
너무 늦게 혹은 아직은 이른.
내 보이는 모습은 그리 눈에 띄지 않아도,
더러운 때 다 묻히고 살아도 혹, 또 나를 향해 못마땅해 하는 눈을 흘기더라도.
내가 안고 가야 하는 것이 있다는 것을.
 
다시 월요일이다.
벚꽃이 스러지듯 5월이 휘청이며 지나간다,
이제 아이들과 난 더위를 가로지를 것이고
더위는 우리를 맹렬히 질투할 것이다.
 
괜찮다. 그 때 마다 파란색 입김을 쏟으며
어릴 적 차창 너머로 보이던 기도문을 흥얼거릴 생각이니까.
 
내 탓이오.
내 탓이오.
내 큰 탓이로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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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지난 주말에 썼던 선생님의 일기를 이제야 올려.
   선생님이 일기를 너무 오랜만에 올리지? 우리 세빛8기들도 일기 열심히 써서
   선생님과 일기장으로, 마음으로, 문장으로 만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