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는 남녀 구별이 엄격한 유교 사회로 중매결혼이 일반적으로 행해졌다. 중매에는 남자와 여자의 생년 월, 일, 시간을 적은 사주단자(四柱單子)로 궁합을 맞추고, 혼사(婚事)가 정해지면 혼서지(婚書紙)와 예물을 담은 납폐함(納幣函)을 보내 약혼을 증명하였다.
혼인 절차는 신랑이 신부 집에 나무 기러기[목안(木雁)]를 바치는 전안례(奠雁禮), 신랑과 신부가 맞절을 하는 교배례(交拜禮), 합환주를 나누어 마시는 합근례(合巹禮) 순으로 진행되었다. 중국의 가족 예절서인 『주자가례(朱子家禮)』에는 신랑이 신부를 자기 집으로 맞이하여 초례(醮禮)를 치르는 친영(親迎)으로 규정되어 있으나, 우리는 관행적으로 신랑이 신부 집에 가서 초례를 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