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화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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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김진아 | 등록일 | 16.09.19 | 조회수 | 10 |
![]() 벽돌로 아름답고 견고하게 지은 화성 화성 건축의 꽃, 장안문화성에는 모두 11개의 문이 있어요. 화성의 4대문으로 부르는 장안문, 팔달문, 창룡문, 화서문과 비상시 군사들이 이용할 수 있는 5개의 암문, 그리고 물이 지나는 문인 북수문과 남수문이 있지요. 11개의 문은 저마다 뚜렷한 특징을 갖고 있지만 그중 최고의 문은 바로 장안문이에요. 장안문은 임금이 사는 북쪽 한양을 향해 세워진 화성의 정문으로, 화성의 출입문 가운데 가장 크고 화려합니다. 높은 성곽 출입문 위에 2층 누각이 세워진 모습은 위풍당당하지요. 화성의 상징인 장안문은 출입문인 동시에 치밀하게 설계된 군사 시설이에요. 장안문 바깥에는 반원형 모습의 성벽인 옹성이 세워져 있어요. 옹성은 적으로부터 장안문을 보호하고, 동시에 장안문 앞까지 진입한 적군을 사방에서 포위하여 공격할 수 있는 군사 시설이에요. 옹성 출입문 위에는 적군이 문에 불을 지를 경우에 대비하여 물을 저장해 놓은 5개의 커다란 구멍인 오성지가 있답니다. 장안문은 적군을 효과적으로 방어하기 위하여 일정한 거리마다 총이나 활을 사용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어요. 적군을 피해 신속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성벽 위에 몸을 숨길 수 있는 낮은 담장인 여장을 쌓는 것도 잊지 않았습니다. 장안문 양쪽에는 적대라는 곳을 설치했어요. 성벽보다 더 높게 지은 적대는 멀리서 접근하는 적군을 감시하고, 높은 곳에서 효과적으로 적군을 공격할 수 있도록 건설한 곳이에요. 그리고 적대 옆에는 성벽이 튀어나온 곳에 건물을 짓고 군사를 머물게 한 포루가 있어요. 포루에는 화포를 두어 적을 공격했지요. 이처럼 화성은 치밀하게 설계된 군사 시설물을 통해 적군의 움직임을 이중 삼중으로 살피고 방어와 공격을 효과적으로 할 수 있도록 건설되었습니다. 각기 다른 기능과 멋을 간직한 군사 시설물화성 성곽을 따라 건설된 시설물은 모두 48개였어요. 그중 군사적인 특징을 잘 드러낸 건축물이 공심돈이에요. 공심돈은 적군을 감시하도록 높은 곳에 설치한 것으로 망루와 비슷하지만 망루보다 더 웅장한 모습의 건축물이에요. 화성에는 동북공심돈, 서북공심돈, 남공심돈이 있었는데, 남공심돈은 현재 남아 있지 않아요. 이 가운데 가장 독특하고 아름다운 건축물은 동북공심돈이에요. 동북공심돈은 벽돌을 차곡차곡 쌓아 올려 빈틈없이 지은 원통 모양의 건물이에요. 동북공심돈은 내부가 더 독특하답니다. 바닥에서 누각까지는 나선형 계단이 설치되어 있고 실내는 여러 층으로 나눠져 있어요. 또한 층마다 적군을 감시하고 활이나 총을 쏠 수 있는 작은 구멍이 있어요. 공심돈에서는 24시간 군사들이 머물며 주변을 감시했다고 해요. 화성에서 가장 높은 팔달산 정상에는 장군이 병사들을 지휘했던 장소인 서장대가 있어요. 서장대 동쪽에 외간이라는 깃대를 세워 깃발을 통해 군사훈련이나 주요 행사를 알렸다고 해요. 그리고 서장대 서쪽에는 쇠뇌라는 화살을 쏘던 서노대가 있습니다. 화성에 세워진 건축물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는 북수문과 동북각루를 꼽을 수 있어요. 화홍문으로 더 잘 알려진 북수문은 물이 흐르는 수로 위에 지어진 것으로 아치와 어우러진 건물이 아름답습니다. 북수문 위쪽 구릉에는 동북각루가 있어요. 각루는 높은 곳에 설치하여 성곽 주위를 감시하던 곳으로 휴식 공간이기도 했어요. 휴식 공간으로 사용되었던 만큼 경치가 뛰어난 곳에 지어졌지요. 화성에 세워진 4개의 각루 중 가장 경치가 빼어난 곳에 세워진 것이 동북각루예요. ‘방화수류정’으로도 불리는 동북각루는 인공 연못과 수양버들이 어우러진 풍경이 아름다운 것은 물론이고, 이곳에서는 아치가 아름다운 북수문도 잘 보인답니다. 북수문과 동북각루를 보고 있으면 군사 시설까지 아름답게 지은 선조들의 멋과 지혜에 절로 고개가 숙여질 정도예요. 동북각루 동쪽에는 동암문이 있습니다. 암문은 평상시에는 사용하지 않다가 적군이 성으로 침입해 오면 군사들이 몰래 성을 빠져나가 적을 공격하거나 필요한 식량이나 물자를 운반하기 위하여 세운 군사용 출입문이지요. 성곽 동남쪽에는 봉돈이 있어요. 봉돈은 봉화(연기와 불)를 통해 정보를 주고받았던 곳으로 서울 남산 봉수대와 같은 기능을 했지요. 봉돈에서는 밤에는 불을 피워 소식을 전했고, 낮에는 연기로 위급한 소식을 알렸어요. 불이나 연기의 숫자에 따라 위급한 정도와 내용이 달랐습니다. 봉돈 하나에서 연기가 나면 이상이 없다는 것이고, 2개는 적군이 나타났다는 것을 뜻했어요. 3개는 적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뜻하고, 4개는 적이 안으로 들어온 것을 뜻하고, 5개 모두에서 연기가 나면 전투가 벌어졌다는 뜻이었어요. 조선 후기 건축을 엿볼 수 있는 공간들화성의 대표적인 또 하나의 장소는 화성 한가운데에 자리한 행궁입니다. 행궁이란 임금님이 지방을 둘러보거나 전쟁이나 재난으로 궁궐을 떠나 지방에 머물 때 임시로 사용했던 궁궐을 말해요. 화성 행궁은 조선 시대의 대표적인 행궁으로, 정궁 형태로 완성되어 자그마치 600여 칸에 이르는 커다란 공간이었습니다. 화성 행궁도 정조 때 세워졌어요. 정조는 아버지 세도 세자의 무덤을 이 지역으로 옮긴 후 여러 차례 참배했는데, 그때마다 행궁에 머물면서 다채로운 행사를 치렀습니다. 대표적인 행사가 1795년에 치러진 정조의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 잔치입니다. 화성 행궁에 가면 정조가 어머니를 위하여 잔치를 베풀었던 장소와 정조가 업무를 보았던 곳, 옛날 과거 시험을 치렀던 현장을 볼 수 있습니다. 서양의 앞선 건축 기법과 동양 건축의 아름다움을 동시에 엿볼 수 있는 화성에는 기존의 도시들과는 달리 넓은 도로와 각기 다른 용도의 다양한 도로가 만들어져 있어요. 특히 장안문에서 행궁을 거쳐 팔달문으로 이어지는 남북대로는 이전까지는 볼 수 없었던 큰 규모를 갖추고 있지요. 화성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성곽 도시로 조선 후기 건축 문화의 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전까지 세워졌던 성곽과는 규모와 형태가 다른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재료와 건축 기법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면에서 새로운 모습을 보여 주었습니다. 동서양의 건축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화성은 우리의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입니다. ▶ 흥미진진 포인트 ① 백성들을 위해 살다 간 학자, 다산 정약용다산 정약용은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실학자이자 저술가였습니다. 정약용은 15세 때부터 친척이었던 이벽을 비롯하여 이승훈, 이가환, 박지원 등과 사귀면서 실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조선 후기에 탄생한 학문인 실학은 농업, 상업, 공업을 발전시켜 백성들을 잘살게 하고 부강한 국가를 건설하자는 실용적인 학문이었지요. 동서양 성곽 도시의 장단점을 파악하여 화성 건설에 적용하였고, 거중기 등 과학 기구도 발명하여 빠르고 효율적으로 화성을 건설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고민 끝에 완성된 것이 사회 변화를 강조하는 여러 권의 책이었습니다. 정약용이 유배지에서 쓴 책으로는 《경세유표》, 《목민심서》, 《흠흠신서》 등이 있습니다. 이 책들은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읽고 있습니다. ▶ 흥미진진 포인트 ② 조선 시대의 시험 제도조선 시대에는 여러 시험 제도가 있었습니다. 그중 최고의 시험은 궁궐에서 실시되었던 과거 시험으로, 조선 왕조에서 관리가 될 수 있는 최고의 시험 제도였지요. 그중 하나가 정조가 화성을 방문할 때면 실시되었던 과거 시험입니다. 화성 행궁 ‘낙남헌’에서 실시된 이 과거 시험은 국가의 경사스러운 날에 임시로 실시했던 과거 시험입니다. ▶ 흥미진진 포인트 ③ 거중기여러분도 아파트 공사장이나 높은 건물을 짓는 곳에서 기중기를 보았을 것입니다. 무거운 건축 자재를 들어 올리는 데 쓰이는 기중기는 정약용이 발명한 거중기와 원리가 같은 장비입니다. ▶ 추천 답사 코스 걷는 만큼 보이는 화성수원 화성을 잘 살펴보려면 성곽을 따라 걷는 것 외에는 뾰족한 방법이 없습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지만 수원 화성은 걷는 것만큼 볼 수 있는 유적지입니다. 따라서 체력이 충분할 때 먼저 이곳들을 둘러본 뒤 나머지 지역은 여유를 갖고 천천히 둘러보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편안한 신발과 화성 안내 지도, 물과 간단한 음식을 준비하면 더 즐거운 화성 관람이 될 것입니다.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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