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학년 7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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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의 자랑스런 인물,청주의자랑스러운 일(김태민)

이름 서유림 등록일 17.09.19 조회수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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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손병희(1861년 4월 8일 ~ 1922년 5월 19일)

 

호 의암. 초명 응구. 후명 규동. 충북 청주 출생. 1882년(고종 19) 22세 때 동학에 입교, 2년 후 교주 최시형을 만나 수제자로서 연성수도하였다.

 

1894년 동학농민운동 때 통령으로서 북접의 농민군을 이끌고 남접의 전봉준과 논산에서 합세, 호남 ·호서를 석권하고 북상하여 관군을 격파했으나, 일본군의 개입으로 실패하고 원산 ·강계 등지로 피신하였다. 1897년부터 최시형의 뒤를 이어 3년 동안 지하에서 교세 확장에 힘쓰다가 1901년 일본을 경유, 상하이로 망명하여 이상헌이라는 가명을 사용하였다.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오세창 ·박영효 등을 만나 국내사정을 듣고 1903년에 귀국, 두 차례에 걸쳐 청년들을 선발하여 일본으로 데리고 건너가 유학시켰다.

 

1904년 권동진 ·오세창 등과 개혁운동을 목표로 진보회를 조직한 후 이용구를 파견하여 국내 조직에 착수, 경향 각지에 회원 16만 명을 확보하고 전회원에게 단발령을 내리는 등 신생활운동을 전개하였다. 이듬해 이용구가 배신하여 친일단체인 유신회와 합하여 일진회를 만들고 을사조약에 찬동하는 성명을 내자, 즉시 귀국하여 일진회와는 관계가 없음을 밝히고 이용구 등 친일분자 26명을 출교시켰다.

 

1906년 동학을 천도교로 개칭하고 제3세 교주에 취임, 교세 확장운동을 벌이는 한편, 출판사 보성사를 창립하고 보성·동덕 등의 학교를 인수하여 교육 ·문화사업에 힘썼다. 1908년 교주 자리를 박인호에게 인계하고 우이동에 은거, 수도에 힘쓰다가 1919년 민족대표 33인의 대표로 3·1운동을 주도하고 경찰에 체포되어 3년형을 선고받고 서대문 형무소에서 복역하다가 이듬해 10월 병보석으로 출감 치료중 별장 상춘원에서 사망했다. 1962년 건국공로훈장 중장(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



<유네스코 세계기록 유산, 직지>

≪직지심체요절≫은 충청북도 청주에 있는 흥덕사란 절에서 1377년에 금속활자로 찍어 낸 책이에요. 당시에 50~100부 정도 인쇄되었을 것으로 추측하는데, 현재는 하권 한 책만 프랑스 국립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어요. 프랑스 국립 도서관은 이 책을 아주 귀한 책으로 생각하여 단독 금고에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지요.

직지는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본의 가치를 인정받아 2001년 유네스코 세계기록 유산으로 등재되었으며 2005년 유네스코 직지상이 제정되어 2년마다 9월 시상되고 있습니다.

직지는 서양 최초의 금속활자인쇄본인 구텐베르크의 42행 성서보다 무려 78년이나 앞섰으며, 우리나라의 금속활자 발명은 그보다 더 오래되었다고 합니다. 아직 발견되지 않아 기록에서만 만나볼 수 있는 [고금상정예문]은 구텐베르크의 성서보다 200년 이상 앞선 것이라 하니 놀라울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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