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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에 종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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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김성우 | 등록일 | 16.09.28 | 조회수 | 32 |
한복의 구성[편집]일반적으로 옷에는 속옷부터 바지와 치마 등을 포함하는 하의, 셔츠나 남방을 가리키는 상의 등 그 쓰임새와 입는 용도에 따라 구분 지어져 있다. 한복에도 두루마기, 포, 바지, 마고자 등 착용 시 가장 기본부터 입는 옷부터 맨 위에 걸치는 두루마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종류가 존재하며 이들 중 가장 기본적인 요소를 구성하는 한복에 대해 다룬다. 저고리[편집]![]() ![]() 저고리의 구조[주해 1] 저고리는 한복을 구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상의로서 남자와 여자 모두가 입는 옷이다. 저고리는 역사상 신분의 상하와 유행에 가장 민감한 옷[7] 으로서 여전히 한복 연구의 중심축을 차지하고 있다. 팔과 상체를 덮는 저고리는 그 부위에 따라 길, 깃, 동정, 고름, 소매 등으로 구성된다.[8] 깃은 앞몸판에서 뒷몸판까지 연결되어[9] 보통 깃은 목둘레를 장식하며 섶은 저고리의 좌우에 각각 달려 몸을 여미는 역할을 한다. 옷고름은 의복을 리본형태로 묶어 정돈하는 목적이지만 후대에 갈수록 저고리의 길이는 짧아지고 옷고름은 점차 길어지면서 장식적인 역할을 하였다. 또한 동정은 의복의 관리면에서 세탁하기에 편리한 방법으로 이용된 기능적인 역할을 하는 부위로 저고리의 단정함을 결정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 종류를 나누는 방법으로는 두 가지가 있다. 그 재봉 방법이나 소재에 따라 홑·겹·솜·누비 저고리로 구분되며 각 부분에 다른 색의 천을 쓴 데에 따라 민저고리, 반회장저고리, 삼회장저고리로 나뉜다.[10] 여자 한복의 경우 저고리에 끝동이 있어 자수를 놓기도 한다.[11] 남성의 저고리가 상대적으로 거의 변화가 없었다면 여성의 경우 조선 시대 동안 급격하게 짧아져 19세기 후반에 그 길이가 가장 짧아진다. 그러나 개량 운동으로 근현대의 저고리는 좀 더 길어져 허리선 조금 윗선까지 올라온다. 이에 따라 고름도 좀 더 길어지고 넓어지게 된다. 이에 반해 남자의 저고리는 등 전체를 덮을 정도로 길고 고름도 긴 편이었다.[12] 치마[편집]![]() 치마는 한자로 裳(상) 혹은 裙(군)으로 쓰며 한복에서는 하의를 가리키되 여자 한복에 한정된다. 저고리의 경우 성별에 관계 없이 입었지만 치마는 여성만에 한정됐다는 사실이 다르다. 고구려 벽화와 경주 벽화분을 대조해볼 때 고구려 여성은 치마를 먼저 입고 그 위에 저고리를 입었으며 치마 주변(허리춤)에 띠를 두른 것으로 파악된다.[13] 그러나 치마를 입고 저고리를 입는 것은 고려 시대 전까지는 관습처럼 굳어지지 않았던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14] 고구려 시대에는 서구형처럼 황금비례를 추구했으며 통일신라 시대에는 긴 치마를 저고리 위에 입어 당나라의 형태와 아주 유사한 형태를 띠었다.[15] 속치마는 치마와 비슷한 용도로 20세기 초, 즉 개화기 부터 입기 시작하여 조끼허리에 달아 명주나 삼팔ㆍ옥양목ㆍ인조 등을 사용하였다. 겉치마와 다르게 조끼허리를 쓴 것은 이화학당의 미국인 교장 윌터의 지도에 따른 것이라 전해진다.[16] 20세기 중반에 이르자 겉치마는 소매가 없는 웃옷을 겸해 위로 가슴을 덮게 되었으며 저고리를 걸쳐 입게 되었다.[17] 한복의 치마는 그 착장법이 뒤여밈으로 다른 아시아 국가들의 의상과 약간 다른 특징이 있다. 인도의 전통 의상인 사리[18] 는 치마를 두른 후 앞으로 묶으며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의 전통 복식인 케바야[19], 캄보디아의 삼포트[20][21] 등은 허리 앞에서 묶어 앞에 혁띠를 착용하거나 앞으로 여민다. 바지[편집]![]() 바지는 한복에서 하의를 가리킨다. 꼭 여성이 입어서는 안 된다는 법은 없으나 대개 남자 한복을 지칭하며 사실 한복이 아니더라도 청바지 등의 일반적인 의복을 가리킨다. 한복의 바지는 6세기까지 신분의 차이 없이 그냥 바지부리를 여맸으나 7세기부터는 여매는 것 대신 선으로 두르는 형태가 생겨난다.[22] 조선왕조실록에서는 겹고, 단고 혹은 단순히 고로 표기하고 있다. 겹고라는 의미는 겹바지임을 가리킨다.[23] 바지는 복색, 재봉방법, 자수 등에 따라 홑바지, 가죽바지, 명주바지, 무명바지 등으로 이름을 구분한다.[24] 한복 바지와 서구식 바지가 다른 점은 구성은 대칭하지만 앞뒤 중심이 사선이어서 움직일 때 편하고 또 한편으로는 착용자의 위엄과 사회적 지위를 나타낸다는 데 있다. 따라서 치수가 분명히 정해져 움직임에 제한이 있게 되는 양장 바지와 달리 한복 바지를 입으면 움직임에 상대적인 불편함을 덜 느끼게 되어 좌식 생활에 편했다.[23] 바지라는 용어는 "把持"(파지)라고 정인지가 기록한 것이 최초[25] 이며 왕과 왕비의 바지는 특별히 '봉디'(봉지)라고 별도로 부르는 이름이 있었다.[26] 포[편집]![]() 포는 도포를 의미하는 말로서 외투의 일종이며 방한복으로서의 역할을 함과 동시에 예를 갖추는 자리에서는 꼭 입는다.[27] 두루마기도 사실상 포의 일종이다. 포는 중국과 일본의 의복과 한국의 의복을 구분하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여성의 의복을 보았을 때 한복은 저고리-치마를 기본형으로 하고 포를 걸치지만 중국과 일본의 옷은 원피스에 해당하므로 그 형상이 다르다고 볼 수 있다.[28] 여자 한복에 저고리가 있다면 남자 한복에는 외의인 포가 있었으며 이는 삼국시대 이후로 고려와 조선에 이르기까지 한복을 아우르는 전통이었다. 남자 한복의 선을 나타내기도 했다.[29] 조선 시대의 남자 복식은 후대에 두루마기가 포를 대체했으므로 상당히 많은 비중을 차지했으며 임진왜란을 기준으로 하여 보았을 때 조선 전후기의 특징을 구분하는 척도가 되기도 한다.[30] 조끼와 마고자[편집]안에 덧대어 입는 저고리인 덧저고리와 흡사한 개념을 통칭하여 쓰는 말인 조끼는 흔히 서양 복식에서 베스트(vest-조끼)라고 말하는 것과 동일하다.[31] 조끼와 마고자가 다른 복식과 약간 다른 점이 있다면 조선 왕조 말엽에 유입되었다는 데 있다.[32] 먼저 조끼는 서양 복식에서 들어온 것으로 한복에 주머니가 없어 소지품을 보관하는 것이 어려웠던 점을 보완하였다.[33] 1897년 병자수호조약 체결 이후 조선 사회에는 서구 문물이 도입되기 시작한다. 전통 한복 문화는 한·양복 혼용으로 넘어가는 변화를 겪게 되어 실용성이 두드러지는 쪽으로 변화하는데 이 시기를 거치면서 양복에서 차용한[34] 조끼가 등장한다. 조끼와 달리 마고자는 만주 지방의 옷으로 원래 이름은 마괘 혹은 마괘자[35] 였고 흥선대원군이 1887년 만주에서 돌아오면서 들려왔다는 이야기가 가장 널리 알려진 이야기이다.[36][37] 그는 마고자로 추운 기후를 견딘 것으로 알려졌으며 보온효과에 더해 입기가 쉬워 백성들에게도 금방 퍼지게 되었다.[36][38] 남녀 모두 입는 겉옷으로 남자들은 여름이 아니면 반드시 입는다. 처음부터 성별 구분 없이 입지는 않았으며 남자만 입던 것이 후에는 상관 없이 남녀노소 입게 변하였고 앞에 섶이 생겨났다.[39] 형태상으로는 저고리보다 길이가 조금 더 길고 목 부분은 많이 파여 있어 깃과 동정을 따로 붙이지 않는다.[40] 입는 순서로 보면 저고리 위에 조끼를 입고 그 위에 마고자를 입은 뒤 외출 시에는 두루마기를 둘렀다
출처: Naver 지식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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