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학년 9반

안녕하세요. 여러분!

싱그러움이 가득한 3-9 '초록 완두콩반' 입니다.

몸과 마음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서로 아끼고 사랑하며 알차고 행복한 1년이 되기를 바랍니다.

급훈: '나를 사랑하듯 남을 배려하면 우리가 됩니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지'

       

3-9 초록 완두콩반(2기)
  • 선생님 : 김현희
  • 학생수 : 남 13명 / 여 1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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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1 등록일 16.09.27 조회수 40
종 목 충청북도 기념물
제122호
명 칭증평 연병호 생가 (曾坪 延秉昊 生家)
분 류 유적건조물 / 인물사건/ 인물기념/ 탄생지
수량/면적1동
지정(등록)일2002.01.11
소 재 지 충북 증평군 도안면 산정길 21 (석곡리)
시 대조선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곡산연씨종중
상 세 문 의충청북도 증평군 복지문화과 043-835-3533

증평 연병호 생가에 대한 설명입니다.

원명 연병호(1894∼1963)의 부친인 연채우(延采羽)〈延彩羽〉의 집으로, 독립애국지사 연병호가 태어나고 성장한 생가인 동시에 만년에 이곳에서 살다가 생애를 마친 집이다.

연병호는 1894년에 괴산군 도안면 석곡리에서 출생하여, 1919년 중국으로 망명하여 길림성 북로군정서 참모겸 서기로서 국권회복 운동을 하였다. 1919년 상해 임시정부 활동을 지원하였으며, 청년외교단<비밀조직> 활동으로 검거 투옥되었다. 이후 다시 망명하여 독립혁명당을 조직하였으며, 1937년 임시정부에서 활약 중 일본 관헌에 체포되어 징역 8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1945년 제헌국회의원에 당선되었으며, 1948년 재당선되었다.

현재 정화사업 결과 초가집이 원형을 유지하고 있으며, 주변 담장과 신축 사당이 인접하여 있다. 당초 집 뒤에 있었던 장독대와 옆에 있었던 옛 화장실을 노인들의 증언으로 알 수 있다. 경내에 애국지사를 기리는 비(碑)가 들어서 있다. 당초 있었던 연자방아의 유물이 남아 있다. 형식 및 구조는 정면 3칸·측면 3칸의 토벽 초가집으로 남향하였으며 평면형식은 외통형이다.

이 가옥의 특징은 19세기 가장 보편적인 민가의 형식과 모습을 거의 그대로 간직한 초가집으로 되어 있다. 집의 앞·뒤 공간이 당초의 모습대로 남아 있고, 담장과 출입문의 위치도 목격자들의 증언과 일치하고 있다.

당초의 한옥 모양을 거의 그대로 보존하고 있으며, 19세기 농촌의 민가 양식을 볼 수 있다.
증평 연병호 생가 문화재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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