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학년 9반

안녕하세요. 여러분!

싱그러움이 가득한 3-9 '초록 완두콩반' 입니다.

몸과 마음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서로 아끼고 사랑하며 알차고 행복한 1년이 되기를 바랍니다.

급훈: '나를 사랑하듯 남을 배려하면 우리가 됩니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지'

       

3-9 초록 완두콩반(2기)
  • 선생님 : 김현희
  • 학생수 : 남 13명 / 여 11명

속리산 법주사

이름 5조 등록일 16.09.27 조회수 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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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보은군 속리산면 속리산에 있는 이다. 법주사의 개조()로 알려진 의신()이 일찍이 불법을 구하러 천축(: 인도)으로 건너가 그곳에서 경전()을 얻어 귀국하여 나귀에 싣고 속리산으로 들어가 553년(신라 진흥왕 14) 이 을 창건하였는데, 법()이 안주할 수 있는 탈속()의 이라 하여 법주사라는 명칭이 붙여졌다고 한다. 그러나 법주사의 정신적 지주가 된 미륵신앙이나 법상종()의 유식사상()은, 혜공왕 때 이 의 중흥에 크게 기여한 진표()와 그의 제자 영심()에 의하여 발현()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성덕왕 때 중수()하였는데, 지금 남아 있는 석물()은 모두 이때 만들어진 것이라 한다. 그 후 여러 차례 중수하여 현존하는 목조건물은 모두 조선 후기의 것이다.

경내에는 유명한 법주사팔상전(殿: 국보 55)을 비롯하여 쌍사자석등(: 국보 5), 석련지(: 국보 64), 사천왕석등(: 보물 15), 마애여래의상(: 보물 216) 등의 국보와 보물을 비롯하여 법주사세존사리탑(: 충청북도유형문화재 제16호), 법주사사천왕문(충청북도유형문화재 제46호), 순조대왕태실(충청북도유형문화재 제11호) 등의 지방문화재가 있다.

이 밖에 대웅보전·조사각()·일주문()·홍전문()·대종각()·능인전(殿)·석조()·수정암()·중사자암() 및 여러 대사의 비, 암지() 등 많은 유물이 있다. 또 조선 후기까지 35칸에 2층으로 된 이 사찰의 중심 법당인 용화보전(殿)이 있었고, 이 전각 안에 금색의 육장상()이 있었다. 그러나 1872년 당백전() 주조 명목으로 대원군에 의해 육장상은 압수되고 용화보전도 헐리게 되었다. 1989년 사월 초파일에 옛 용화보전 자리에는 높이 33m의 청동미륵불이 점안되어 법주사의 새로운 상징물이 되었다. 법주사는 진표·영심 이후 도생()·자정()·신미()·수미()·일선()·각성()·희언() 등 고승들이 그 법통을 이어 왔다.

1966년 6월 24일 사적 및 명승 제4호 속리산 법주사 일원으로 지정되었으나 2009년 12월 21일 지정해제됨과 동시에 사적 제503호 보은 법주사와 명승 제61호 속리산 법주사 일원으로 다시 지정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보은 법주사 [報恩 法住寺]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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