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학년 4반

안녕하세요. 여러분! 항상 건강하고 밝은 우리반 학생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서로 배려하며 함께 성장하는 우리
  • 선생님 : 김지인
  • 학생수 : 남 12명 / 여 13명

송시열-우예나

이름 김지인 등록일 18.05.28 조회수 36

1633년(인조 11) 생원시에 장원급제하여 최명길의 천거로 경릉참봉이 되었으나 곧 사직, 1635년 봉림대군의 사부()가 되었다. 이듬해 병자호란 때 왕을 호종하여 남한산성으로 피난하였고, 1637년 화의가 성립되자 낙향, 1649년 효종이 보위에 오르자 장령에 등용, 세자시강원진선을 거쳐 집의()가 되었으나 당시 집권당인 서인의 청서파에 속한 그는 공서파의 김자점이 영의정이 되자 사직하고 다시 낙향하였다. 이듬해 김자점이 파직된 뒤 진선에 재임명되었으나 김자점이 청나라에 조선이 북벌을 계획하고 있다고 밀고함으로써 북벌계획의 인물로 지목받아 청의 압력으로 사직하고 다시 낙향하였다. 그뒤 충주목사)·집의 등에 임명되었으나 사양하였다.

1657년(효종 8) 효종에게 정유봉사 상소를 올려 그의 북벌정책을 비판하였고 이로 인해 효종의 양보를 이끌어 내었다. 1658년(효종 9) 찬선에 등용되고, 이조판서로 임명되어, 효종의 명을 받아 북벌계획을 담당하였으나 이는 명목상 추진하였을 뿐 실질적인 북벌정책에는 반대했다. 이듬해 효종이 급서하자 북벌계획은 곧바로 중지되었다. 그뒤 자의대비의 복상문제가 제기되자 기년설을 주장하여 관철시키고 3년설을 주장하는 남인을 제거하여 정권을 장악하였고 . 1660년(현종 1) 우찬성에 올랐을 때, 앞서 효종의 장지를 잘못 옮겼다는 탄핵을 받고 낙향하였고, 1668년 우의정이 되었으나 좌의정 허적과의 불화로 사직했다가 1671년 다시 우의정이 되고 이듬해 좌의정이 되었다.

1674년 인선왕후()의 별세로 다시 자의대비의 복상문제가 제기되어 대공설을 주장하였으나 남인 쪽이 내세운 기년설이 채택됨으로써 실각하였다. 제1차 복상문제 때 기년설을 채택하게 한 죄로 이듬해 덕원으로 유배, 그뒤 여러 곳으로 유배장소가 옮겨졌다. 1680년 경신환국()으로 남인이 실각하게 되자 중추부영사로 기용되었다가 1683년 벼슬에서 물러나 봉조하가 되었다. 이 무렵 남인에 대한 과격한 처벌을 주장한 김석주를 지지함으로써 많은 비난을 받았는데 그 중에서도 제자 윤증과의 감정대립이 악화되어 마침내 서인은 윤증 등 소장파를 중심으로 한 소론()과 송시열을 영수로 한 노장파의 노론으로 다시 분열되었다.



주자학()만의 최고의 학문으로 유일시하였으며 예학을 중시했다. 그의 사상은 송익필, 김장생, 김집으로 이어는 학통을 계승하여 기호학파()의 주류를 이루었다. 스승 김집의 뜻에 따라 대동법을 반대하였고 주자에 대한 절대적 신임이 지나쳐 그와 다른 사상이나 경전의 해석을 경계하였고 주자와 다른 사상은 사문난적으로 내몰았다. 이황()의 이원론적()인 이기호발설()을 배격하고 이이의 기발이승일도설()을 지지, 사단칠정()이 모두 이()라 하여 일원론적() 사상을 가지고 있었다. 성격이 과격하여 정적()이 많았고 스승 김집이 죽고나자 서인의 영수가 되었으며 그의 문하에서 서인들이 추종하였다. 당시 중앙정치는 서인들의 반정으로 정권을 잡은 인조의 왕권이 취약할 수 밖에 없었고 그의 아들인 효종 또한 서인들의 득세로 왕권이 취약했다. 따라서 왕권보다 강력한 집단 세력을 형성한 서인의 의해 정국이 주도되었다. 이로 인해 서인의 영수로 군림하였던 송시열의 인지도와 영향력은 인조, 효종, 현종, 숙종을 거치면서 점차 높아졌고 관직에 출사않고 지방에 머물면서도 정국의 주도하는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문묘()·효종묘()를 비롯하여 청주의 화양서원(), 여주의 대로사(), 수원의 매곡서원() 등 전국 각지의 많은 서원에 배향되었고 조선 중기 가장 영향력이 높았던 정치가, 학자로 평가된다.

저서에 《송자대전()》 《우암집()》 《송서습유()》 《주자대전차의()》 《정서분류()》 《주자어류소분()》 《논맹문의통고()》 《심경석의()》 《사계선생행장()》 등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송시열 [宋時烈]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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