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군 임경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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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김보경 | 등록일 | 18.05.11 | 조회수 | 40 |
안녕하세요. 저는 김뿐쑥(김은수)이예요. 제가 계정이없어서 언니걸로 했습니다 열심히 봐주세요 외교는 비단에 싼 칼”이라는 어느 외교관의 말을 인상 깊게 기억해요 거의 모든 인간의 내면과 행동은 그 표리(表裏)가 부동(不同)합니다 이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자, 어쩌면 숙명임니다 그 부동함을 최소화하거나 아름답게 포장하는 것이 종교나 문명의 목표와 수준일 것이에요 17세기 이후 조선의 외교는 그런 표리의 불일치가 극도로 만연한 분야였다어요 중화질서의 마지막 보루였던 명(明)이 ‘오랑캐’인 청(淸)에 속절없이 멸망하는 상황을 맞으면서 조선을 지탱하던 주요한 질서는 거대한 혼란에 휩싸였다어요 그런 혼란은 수많은 모색과 반발과 수정을 거친 뒤에야 ‘소중화(小中華)’라는 개념을 찾아 일단 진정되었다답니다 ‘오랑캐’에게 굴복해 사대할 수밖에 없는 대외적 현실이 자명할수록 ‘복수설치(復讎雪恥)’와 ‘재조보은(再造報恩)’의 이념과 지향은 강화되었다습니다 조정의 논의와 유자(儒者)들의 글에서 그런 이상과 현실의 괴리는 투명하게 드러났고, 때로는 그만큼 공허하기도 했습니다 임경업(林慶業, 1594∼1646)은 그런 괴리의 시대에 저항하다가 옥사한 비운의 무장이었습니다. 출전과 망명, 투옥과 비극적인 죽음으로 구성된 그의 삶은 그 뒤 안타까움과 분노의 큰 반향을 일으켰고, 문학 작품으로 재현되어 널리 보급되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봐주셔서 감사합니당~~^-^
[네ì´ë²„ ì§?ì‹ë°±ê³¼]임경업 [林慶業] - 대명(對明) 의리를 실천한 비운의 명장 (인물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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