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적인 글을 소개합니다. 육지에서 바라보면 마치 손에 잡힐 듯 가까운 1km 거리. 배로 10분 남짓이면 갈 수 있는 섬. 모양이 어린 사슴과 비슷하다 하여 지어진 이름 소록도. 그러나 이곳은 지난 1916년, 100여 명의 사람들이 강제 격리된 비극의 섬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단 하나. 바로 이들이 한센병, 이른바 문둥병이라 불리던 병을 앓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소록도의 환자들은 ‘3번 죽는다.’ 첫 번째는 한센병 때문이요, 두 번째는 죽은 후 시신 해부요, 세 번째는 장례 후 화장이다. 곁에만 있어도 전염된다는 오해로 100여 명이었던 격리 인원은 1959년에는 6천 명으로 불어났습니다. 하지만 이들을 돌보는 의료진은 고작 5명에 불과했습니다.
그 누구도 선뜻 들어가길 꺼려하던 소록도에 20대 여성 두 명이 스스로 찾아왔습니다. 그것도 먼 땅 오스트리아에서 온 간호사 마가렛과 마리안 수녀였습니다. “맨손이라야 약을 꼼꼼히 바를 수 있다” 의사와 간호사들도 접촉을 기피하는 환자들. 그들의 피고름을 짜고 약을 바르는 두 수녀의 손은 늘 맨손이었습니다.
“주민에게 온갖 사랑을 베푼 두 수녀님들은 살아있는 성모마리아였다” (소록도 주민자치회장 김명호) 약이 모자라면 오스트리아에 호소해 약을 가져와 치료했고 소록도의 쓰러져가는 집들을 두 팔 걷어 직접 고치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수녀회에서 보내온 생활비는 환자들의 간식비로 썼습니다. 그녀들이 묵었던 3평 남짓한 방에 있는 거라곤 작은 장롱뿐이었습니다. 조용히, 하지만, 꾸준하게 이어온 두 수녀들의 선행은 무려 40여 년간 계속됐습니다. 그 사이 6000명에 달하던 환자들은 600명으로 줄었습니다.
그리고 2005년 11월 21일, 두 수녀는 편지 한 장만 남긴 채 소록도에서 사라졌습니다.
‘사랑하는 동무, 은인들에게’
이제는 저희들이 천막을 접어야 할 때가 왔습니다. 한국에서 같이 일하는 외국 친구들에게 소록도에서 제대로 일할 수가 없고 자신들이 부담을 줄 때는 본국으로 돌아가는 것이 좋겠다고 자주 말해 왔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그 말을 실천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이 편지를 보는 당신에게 하늘만큼 감사합니다. 부족한 외국인에게 사랑과 존경을 보내주셨습니다. 같이 지내면서 우리의 잘못으로 마음 아프게 해드렸던 일에 대해 용서를 빕니다.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마리안, 마가렛 올림-
나이가 많아져 더 이상 자신들이 도움을 줄 수 없을 뿐 아니라 되려 짐이 된다 생각한 두 수녀는 편지 한 장만 남긴 채 아무도 모르게 고국으로 돌아간 겁니다.
이후 언론사의 인터뷰는 물론, 감사의 인사까지도 거절한 두 수녀. 그런데 지난 10월 한국의 한 청년 김이산 군이 삼고초려 끝에 이젠 80대 할머니가 된 두 수녀를 만났습니다. “그 먼 곳에서 어떻게 찾아왔어요... 고생 많았지? 아이고.. 하나님이 보내 주셨나 보다..” 떨리는 목소리 인사를 하는 그에게 마리안 수녀님이 건넨 말. “소록도를 떠날 당시 대장암 판정을 받았는데... 짐이 되고 싶지 않아서 떠났어요.” 그리고 미처 알지 못 했던, 떠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털어놨습니다. "요즘엔 나이가 들어서 기억이 잘 안 나는데 한국말과 소록도는 잊혀지지 않아요. 잊을 수가 없지. 너무 행복했으니까.." 현재 치매로 요양원에 계신 마가렛 수녀님은 여전히 그 때의 기억을 잊지 않고 계셨습니다.
-출처:스브스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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