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롬비아 소개
남아메리카 대륙의 북서쪽 끝에 있는 나라. 면적은 114만 1568㎢, 인구는 4166만 2000명(2003)이다. 인구밀도는 36.5명/㎢(2003)이다. 정식국명은 콜롬비아 공화국(Republic of Colombia)이다. 수도는 산타페데보고타이고 에스파냐어를 공용어로 사용하고 있다. 서쪽으로 태평양, 북쪽으로 카리브해에 면하며 북서쪽으로 파나마, 동쪽으로 베네수엘라, 브라질, 남쪽으로 에콰도르, 페루와 접한다.
1.자연
콜롬비아의 지형은 안데스산계(山系)에 속하는 북서부 고지와 남동부 저지로 대별되나 매우 복잡한 편이다. 북서부 고지는 서해안 쪽으로 바우도산맥, 서부의 옥시덴탈산맥, 중앙의 센트랄산맥, 동부의 오리엔탈산맥 등 4개의 습곡산맥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평행하는 산맥들 사이에는 좁고 긴 구조곡(構造谷)이 발달하였으며, 그 사이를 아트라토강(江)·카우카강·마그달레나강 등이 북류하여 카리브해(海)로 흘러든다. 서부산지의 대부분은 결정질 암석으로 덮여 있으나, 도처에 용암대지가 분포한다. 서부산지에서 가장 높은 센트랄산맥은 해발고도 5,000m 이상의 고산지대로서 만년설(萬年雪)로 덮여 있는 곳이 많으며, 최고봉은 크리스토발 콜론산(山;5,775m)이다. 주요하천은 마그달레나강과 그 지류인 카우카강으로 두 강의 길이는 2,700km에 이르며, 예로부터 국내의 중요한 교통로로 이용되어 왔다.
국토의 대부분이 적도를 중심으로 남위 4°에서 북위 12°사이의 열대권에 위치하고 있으나 지형적인 조건으로 기후는 4개로 구분된다. 해안 등 평야지대는 고온다습한 전형적 열대우림기후이고, 해발고도 1,000∼1,500m의 지역은 평균기온 20℃ 내외의 아열대성 기후, 다시 2,000m를 넘으면 연중 평균기온 14∼15℃의 상춘(常春) 기후로 연강수량도 1,000mm 내외의 쾌적한 기후를 이룬다. 해발고도 3,000m의 고지는 하루의 기온차가 커서 밤에는 춥기까지 하다.
이와 같은 기후의 수직적 변화는 식물분포에 영향을 미친다. 해안지방과 저지대는 맹그로브, 야노스는 사바나, 아마존강 유역은 적도우림 등이 무성하다. 그러나 고도에 따라 활엽수림·혼합림·침엽수림이 차례로 분포하고 해발고도 3,000m를 넘으면 나무가 잘 자라지 못하며 4,500m는 설선(雪線)을 이룬다. 동물분포도 다양하여 1,500여 종의 조류를 비롯하여 원숭이·개미핥기·대형 쥐·페카리·사슴·곰·퓨마·표범·라쿤·거북·아나콘다·악어·전기뱀장어·메기 등의 동물이 서식한다.
전체국토의 반 이상이 삼림이며 약 4%만이 경작 가능한 땅인데 그 대부분이 마그달레나강·카우카 강 유역과 기름진 고지대 골짜기에 분포하여 있다. 국토의 약 30%는 영구목초지이다.
2.주민
콜롬비아 주민은 58%의 메스티소(백인과 인디오의 혼혈), 20%의 에스파냐계(系) 백인, 14%의 물라토(백인과 흑인의 혼혈), 4%의 흑인, 3%의 삼보(흑인과 인디오의 혼혈), 1%의 인디오 등으로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는데, 인종차별은 별로 없는 편이다. 인디오는 약 400종족에 이른다. 주민의 대부분은 안데스산맥지대에 집중하여 있고, 일부는 해안지대에 거주한다. 동부의 미개발지대에도 약간의 주민이 살고 있다. 또 50 % 이상의 주민은 도시에서 생활하고 있다. 공용어는 에스파냐어(語)이며, 종교는 국교인 로마가톨릭교가 90%를 차지하고 있고 일부 인디오들은 아직도 토속신앙을 신봉한다.
3.역사
콜롬비아의 고대사의 전모는 수수께끼로 묻혀 있으나, 산아구스틴(마그달레나강 상류)의 유적군(遺蹟群) 및 1968년 5월에 신축된 황금미술관에 소장된 1만 점에 이르는 선사시대의 황금제품 등이 눈길을 끈다. 가장 오래된 문화는 산아구스틴 지역에서 태동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12세기 무렵의 북부 타이로나문화와 현재의 산타페데보고타 주변의 치브차(Chibcha)문화를 비롯해서 여러 지방문화가 발전하였다. 에스파냐인(人)이 1536년 처음으로 콜롬비아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 치브차족(族)은 120만 명이 살고 있었다고 한다.
에스파냐는 1536~1538년에 걸쳐 치브차족을 정복하고 현재의 산타페데보고타에 산타페요새를 구축하였다. 그후에 에스파냐인의 식민이 시작되고, 식민지경제가 발전하기 시작한 17세기 무렵부터 18세기 말까지 아프리카에서 노동력으로서 흑인이 이입(移入)되었다. 한편 식민지에 대한 에스파냐 본국의 가혹한 지배는 식민지 주민의 불만을 격화시켜 일찍이 1780~1781년 사이에 반란을 일으켰다. 그리고 19세기 초에 라틴아메리카 전역을 뒤덮은 민족해방운동에서 시몬 볼리바르의 지도를 받은 콜롬비아 주민은 중요한 역할을 완수하였다.
1819년에는 에스파냐군(軍)을 산타페데보고타 근교에서 격파하고, 현재의 콜롬비아, 베네수엘라, 에콰도르 3국을 포함한 그란(大)콜롬비아공화국이 결성되었다. 1830년 그란콜롬비아공화국이 해체된 후 콜롬비아는 누에바그라나다라고 불렀다가 1886년의 헌법에서 콜롬비아공화국으로 개칭되었다. 이 해방투쟁에서 권력을 장악한 것은 대지주계급이었다. 이 지주계급과 19세기 말부터 침입하기 시작한 외국자본이 결부되어 콜롬비아의 사회·경제적 발전은 뒤틀려져 갔다. 그리고 그것이 전형적으로 나타난 것은 1903년의 파나마 지역의 독립이었다.
이곳에 운하(運河)를 만들면 큰 이익이 따를 것을 알고 있었던 미국은 콜롬비아 정부와 교섭을 하였으나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았다. 마침 그때에 파나마는 콜롬비아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하고 콜롬비아 정부보다도 조건을 완화해서 파나마에서의 운하공사를 미국에 허용하였다. 이에 콜롬비아 정부는 얼마 안 되는 배상금으로 미국과 타협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까지는 보수당과 자유당의 정권교체가 비교적 안정적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전후 양 정당간의 분쟁이 격화되어 드디어 1948년에는 내전(內戰)을 일으켜 한때 군사독재제가 수립되었다. 이 군사독재제는 1957년 보수·자유 양당의 정치휴전으로 완화되고, 이후 4년마다 양당에서 정권을 교체하고 각료·국회의석 등은 절반씩 차지한다는 형식을 취하였다. 그러나 이 정치휴전은 1974년의 선거에서 자유당이 대승함으로써 같은해 8월 파스트라나 보수당 정권을 마지막으로 종결되었다.
출처:네이버지식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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