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학년 3반

꿈을 밀고나가는 힘은 이성이 아니라 희망이며. 두뇌가 아니라 심장이다.

 - 도스토예프스키-

함께 해서 즐거운 우리, 기쁨으로 여는 행복한 세상
  • 선생님 : 박선영
  • 학생수 : 남 13명 / 여 9명

박수근 화백

이름 채시현 등록일 17.04.25 조회수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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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사망 : 1914년 2월 21일, 강원도 양구 - 1965년 5월 6일
경          력 :  1962 대한민국 미술대전 심사위원
수          상 : 2002년 문화관광부선정 5월의 문화인물
 
강원도 양구는 미석 박수근 화백의 고향이다. 1914년 태어난 그는 올해로 탄생 100주년을 맞이했다.

 

1914년, 그가 태어난 때는 우리 근대미술이 막 태동하던 시기였다. 바로 전 해(1913년)에는 춘곡 고희동이 동경미술학교를 졸업하여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화가라는 칭호를 받게 되었다. 그때만 해도 서양화에 대한 인식은 전무한 상태여서 그가 미술대학을 졸업했다는 사실을 신문은 대서특필하고 서양화라는 유화란 우리의 전통회화와는 재료와 기법이 모두 달라서 ‘기름기 있는 되다란 물감을 천에다 바르는’ 그림이라는 해설이 실릴 정도였다. 그런 시절에 태어난 박수근이 성장하여 결국 그가 이룩한 예술적 업적이 우리 근대미술의 마지막 성과로 수렴되었으니 그 상징하는 바가 자못 크다.

 

박수근은 서민의 화가라 일컬어지듯 그의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서민의 일상 모습이다. 골목길 풍경, 일하는 여인, 장터의 여인, 할아버지와 손자, 아기를 업은 소녀, 할머니, 행인, 공기놀이하는 소녀들……

  작품 : 아기 없은 소녀 1953년

 

“나는 진실하게 살려고 애썼다. 또 나는 나의 고난의 길에서 인내력을 길렀다.” - 박수근

이처럼 박수근의 작품은 ‘인간의 선함과 진실함을 그려야 한다’는 자신의 예술론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이며, 고난의 길에서 인내력을 가지고 일구어 낸 보석 같은 결정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시장의 아낙네와 노상의 할아버지, 놀이하는 아이들처럼 그가 살았던 시대의 소박한 일상의 모습들을 화폭에 담아냈다.

 

화단의 변두리에서, 평생 가난의 굴레를 벗어나 보지 못한 채 51세를 일기로 저세상으로 떠난 비운의 화가, 그가 박수근이다. 박수근의 유해는 경기도 포천군 소홀면 동신교회 묘지에 묻혔다가 2004년 4월 15일 양구의 박수근미술관으로 옮겨져 고향 동산에 영원히 잠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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