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학년 3반

꿈을 밀고나가는 힘은 이성이 아니라 희망이며. 두뇌가 아니라 심장이다.

 - 도스토예프스키-

함께 해서 즐거운 우리, 기쁨으로 여는 행복한 세상
  • 선생님 : 박선영
  • 학생수 : 남 13명 / 여 9명

박수근화백

이름 곽채원 등록일 17.04.25 조회수 27
첨부파일

[요약] 한국 근대미술을 대표하는 서양화가. 서양화 기법으로 민족적이며 소박한 한국적 미의 전형을 잘 표현한 대표적 서민화가로 불림

외국어 표기

(한자)

출생 - 사망

1914년 ~ 196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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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근은 한국 근대미술의 대표적인 작가로 가난 속에서도 착하게 살아간 서민들의 삶을 화폭에 담아 '민족의 화가', '서민의 화가'로 불린다.

1914년 2월 21일 강원도 양구(楊口)에서 출생하였다. 어려운 집안환경 속에서 양구초등학교를 졸업한 것이 학력의 전부였다. 그는 밀레의 <만종>을 보고 감동을 받아 독학으로 미술을 공부하였고, 18세가 되던 1932년 제11회 조선미술전람회 서양화부에 봄의 농가를 그린 수채화 <봄이 오다>를 출품하여 입선하여 화단에 등단하였다. 해방 후 월남하여 1952년 제2회 국전에서 특선하였고 1955년에는 대한미협전에서 국회문교위원장상을 수상하였다. 1958년 이후 미국의 월드하우스화랑, 조선일보사 초대전, 마닐라국제전 등 국내외 다수의 미술전에서 활발히 활동하였고, 이듬해 제8회 국전에서는 추천작가를 지내고, 1962년 제11회 국전에서는 심사위원이 되었다. 그는 회백색을 주로 사용하여 거칠고 투박한 화강암 질감으로 표현한 화면에 단조롭고 한국적인 주제를 서민적인 특유의 감각으로 다룬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수술비용이 없어 백내장 치료시기를 놓쳐 1963년에는 왼쪽 시력을 잃고 좌절하기도 하였다. 박 화백은 시대적 불운과 생활고 등의 중압감을 이기기 위해 과음과 제작생활을 강행하다가 51세이던 1965년 5월 6일 간경화로 세상을 떠났다.

대표작으로 <절구질하는 여인>(1952), <빨래터>(1954), <농악>(1962), <아기 업은 소녀>(1963), <고목과 여인>(1964), <나무>(1965) 등이 있다. 특히 <빨래터>는 2007년 5월 국내 미술품 경매사상 최고가인 45억 2000만 원을 기록하며, 주목 받은 후 2009년 11월 법원의 진품 판정이 나기까지 위작 논란에 휩싸이기도 하였다.


박수근 작품 경매 기록

산골에서 가난한 생활을 했던 박 화백은 아기 업은 여인 등 서민들의 순수한 모습과 앙상한 나목 등을 소재로 그림을 그렸으며 당시 쌀 한 가마에 넘겼던 작품은 최근 해외 경매장에서 2~3억 원에 거래되고 있다. 2002년 5월 그의 유화 <아기 업은 소녀>가 국내 현대미술품 경매 사상 최고가인 5억 500만 원에 낙찰되었고 같은 해 12월 <노상>은 5억 원에 팔린 바 있다. 그리고 뉴욕 리스티경매에서 2003년 3월 그의 작품 <한일(閑日)>이 112만 7,500달러(약 13억 원)에 2004년 3월에는 <앉아있는 아낙과 항아리>가 123만 9,500만 달러(약 14억)에 낙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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