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과 나눔과 배려를 바탕으로 함께 즐기며 생활하는 5학년 4반입니다.
4모둠 안시성전투(경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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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이나영 | 등록일 | 16.10.27 | 조회수 | 2 |
645년 4월 1일 이세적(李世勣)이 이끄는 당군의 선봉은 회원진(懷遠鎭 : 지금의 광녕 부근) 쪽으로 진군하는 척하다가 갑자기 통정진(通定鎭 : 지금의 신민 부근)에서 요하(遼河)를 건너 고구려 침공을 개시하였다. 그들은 고구려의 방어체계를 혼란시키기 위해 신성(新城 : 지금의 무순 배관산성)·건안성(建安城 : 지금의 개평) 등 여러 성을 동시에 공격했으나, 이 계획이 실패하자 전군을 집결시켜 4월 15일부터 개모성(蓋牟城 : 무순 고성자 토성)을 공격, 26일에 이를 함락시켰다. 이때 장량(張亮)이 지휘하는 수군은 요동반도에 상륙하여 천연의 요새임을 자랑하던 비사성(卑沙城 또는 沙卑城 : 지금의 대련만 배안)을 공격, 5월 2일 이를 함락시켰다. 한편 태종도 요하를 건너와 이세적의 군대와 합류하여 19일간에 걸친 집요한 공격 끝에 5월 17일 요동성(遼東城 : 지금의 요양)을 함락하고, 이어서 6월 10일에는 백암성(白巖城, 白崖城 : 지금의 燕州城)을 빼앗았다. 백암성 함락 후 당군은 수뇌부 사이의 이견(異見)을 조정하여 다음 공격목표를 안시성(安市城, 安地城 : 지금의 해성 동남 영성자산성에 비정하는 것이 통설임)으로 정하고, 6월 20일 안시성으로 쳐들어갔다. 고구려에서는 이에 맞서 북부욕살(北部褥薩) 고연수(高延壽)와 남부욕살(南部褥薩) 고혜진(高惠眞)으로 하여금 고구려와 말갈(靺鞨)병 15만 명을 거느리고 안시성을 구원하게 하였다. 그러나 두 사람은 당군을 가볍게 보고 성급하게 정면대결을 벌이다가 당군의 포위공격을 당했으며, 결국 살아남은 3만 6,800명의 군사와 함께 항복하였다. 안시성 구원군의 군세에 두려움을 금치 못했던 태종은 뜻밖의 놀라운 전과를 올리자 이는 하늘의 도움이라 하여 승리에 도취했고, 그 여세를 몰아 안시성에 대한 총공격을 개시하였다. 이에 반해 고구려는 안시성 구원군이 패배한데다가 남으로는 신라의 공격을 받고 있었고, 또 북아시아의 새로운 강자 설연타(薛延陀)와 제휴하여 당을 견제해 보려는 외교적 노력마저 실패함으로써 안시성 지원능력을 잃어버렸다. 따라서 안시성은 완전히 고립무원(孤立無援)의 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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