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과 나눔과 배려를 바탕으로 함께 즐기며 생활하는 5학년 4반입니다.
4모둠 안시성 전투(결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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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이나영 | 등록일 | 16.10.27 | 조회수 | 4 |
안시성의 위기를 최대한 이용하기 위해 당은 고연수 등을 앞세워 항복을 권유하는 한편, 당시 가장 위력적인 성 공격무기였던 포거(抛車 : 큰 돌을 날려 보내는 투석기)와 충거(衝車 : 성벽을 파괴하는 돌격용 수레)를 동원하여 안시성을 공격해 왔다. 그러나 안시성측은 이를 번번이 물리쳤고, 무너진 성벽도 재빨리 수리하는 등 확고한 자세로 방어에 임하였다. 안시성의 이 같은 완강한 저항에 당황한 당은 태종의 본영을 여러 번 바꾸어가면서, 또 안시성을 함락하는 날 남자들은 모두 죽이겠다고 공언하면서 안시성 공격에 더욱 박차를 가하였다. 하지만 공격은 뜻대로 되지 않았고 고연수의 건의에 따라 안시성을 그냥 두고 동쪽으로 이동하여 방비가 약한 오골성(烏骨城)을 점령한 다음 곧장 평양으로 진공하자는 논의까지 하게 되었다. 그러나 천자가 친히 싸움터에 나왔으니 안시성을 뒤에 두고 앞으로 나아가는 모험은 할 수 없다는 주장이 제기되어 당의 안시성 공격은 계속 강행되었다. 한편, 장량이 이끄는 수군의 건안성 공격마저 교착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이에 초조해진 당은 이 싸움을 빨리 마무리 짓기 위해 이세적으로 하여금 하루에도 6, 7회씩 성의 서쪽을 공격하게 하였다. 당은 60일에 걸쳐 성의 동남쪽에 연인원 50만 명을 동원하여 성벽보다 높게 토산(土山)을 쌓아 이를 발판으로 성을 공격하였다. 그러나 갑자기 토산이 무너지면서 성벽의 한쪽 귀퉁이가 부서지는 사태가 발생하였다. 고구려군은 이 틈을 이용하여 무너진 성벽 사이로 빠져 나와 토산을 점령하였다. 당은 토성을 탈환하기 위해 3일간 극렬한 공격을 폈으나 실패했으며, 그 결과 당의 작전은 전반적으로 큰 타격을 받게 되었다. 더욱이 겨울이 되어 날씨도 추워지고 군량마저 떨어졌으므로, 당은 할 수 없이 88일간의 포위를 풀고 그 해 9월 18일 서둘러 퇴각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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