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사망한 딸이 후원한 소녀… 유품속 사진 보고 9년째 후원금 케냐 소녀, 한국 찾아 감사의 눈물… 무덤선 케냐어로 추모 노래 선물
지난 23일 오전 11시 경기 남양주시 영락교회공원묘지. 고봉서(83)씨가 케냐 소녀 수잔 챔송(17)의 손을 잡고 딸 화숙씨의 묘비 앞에 섰다. 수잔이 들고 온 진분홍색 꽃을 내려놓는 동안 고씨는 연신 묘비와 그 앞에 놓인 화숙씨의 사진을 어루만졌다.
화숙씨는 2008년 3월, 51세의 나이에 유방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결혼을 하지 않은 화숙씨는 미국 유학을 가 있던 2년을 제외하면 고씨와 떨어져 산 적이 없었다. 별명도 '아빠 껌딱지'였다. 딸은 "아빠가 내가 보고 싶어 힘들어할 테니, 내 흔적을 세상에 남기지 말아달라"는 말을 유언으로 남겼다. 고씨는 파쇄기로 딸의 사진을 모두 없앨 만큼 마음을 모질게 먹고 딸의 유언을 지켰다.
딸 화숙씨의 사진을 든 고봉서(왼쪽)씨가 케냐에서 온 수잔 챔송(가운데), 그의 어머니 바이올렛 오크와레와 함께 딸의 묘역에서 묵념하고 있다. 고씨는 유방암으로 세상을 떠난 딸에 이어 수잔 가족을 후원하고 있다. /박상훈 기자 그런 고씨도 딸과의 두 가지 약속은 지키지 못했다. 차마 딸을 화장(火葬)할 수 없어 묘지에 묻은 것과 딸이 해오던 후원을 이어받은 것이다.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하고 돌아온 화숙씨는 "아이들이 좋다"며 작은 피아노 학원을 열었다. 2007년 7월엔 "어려운 아이를 후원하고 싶다"며 케냐에 살던 수잔을 돕기 시작했다. 딸의 유품 속에는 수잔의 웃고 있는 사진이 들어 있었다. '딸의 후원이 끊기면 이 아이는 어떻게 될까?' 2008년 4월 고씨는 그렇게 수잔의 후원자가 됐다.
고씨는 '마이너스 통장'으로 생활비를 충당할 만큼 생활이 빠듯하다. 하지만 국제구호단체 월드비전을 통해 전달하는 매달 3만원의 후원금은 거른 적이 없다. 3만원은 수잔의 가족이 한 달 내내 농사일을 해야 벌 수 있는 돈이다. 그 돈으로 수잔의 가족은 염소를 사고, 새끼를 내다 팔며 살림을 키웠다. 덕분에 매해 이사를 다니느라 학교도 제대로 가지 못했던 수잔은 새집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됐다.
이날 수잔은 감사를 표하기 위해 케냐에서 1만㎞를 날아왔다. 그리고 딸에 이어 자신을 돕는 고씨도 처음 만났다. 수잔은 화숙씨의 무덤 앞에서 케냐어로 추모의 노래를 불렀다. 고씨는 눈에 눈물이 고인 채 케냐어로 "마산테(고맙습니다)"라고 했다. 수잔은 한국어로 "감사합니다"라고 답했다.
묵념을 끝낸 둘은 근처 벤치로 가 고씨가 손수 쪄온 옥수수와 고구마를 나눠 먹으며 얘기를 나눴다. 수잔이 먹는 모습을 지켜보던 고씨는 "내 힘이 닿는데까지 지원할거예요. 내 딸이 남겨준 손녀니까요" 라고 말했다.
[최아리 기자 usimjo@chosun.com]
-> 저희 가족은 아프리카 토고와 부르키나 파소에 소피라는 언니와 레이몬드라는 친구를 후원하고 있어요! 저는 매달 편지를 쓰는 엄마를 보면서 또 그 아프리카 친구들을 위해 기도하면서 나도 나중에 이런 멋진 후원을 하려고 생각중이에요! 저는 제 용돈으로 조금씩 중국에 있는 선교사님을 후원하고 있는데 우리반친구들도 다른 나라와 또 우리나라의 어려운 친구들을 돕는 것에 함께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이상 허은비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