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시 모음> 이재무의 '길 위의 식사' 외
+ 길 위의 식사
사발에 담긴 둥글고 따뜻한 밥
아니라 비닐 속에 든 각 진 찬밥이다 둘러앉아 도란도란 함께 먹는 밥 아니라 가축이 사료를 삼키듯 선 채로 혼자서 허겁지겁
먹는 밥이다 고수레도 아닌데 길 위에 밥알 흘리기도 하며 먹는 밥이다 반찬 없이 국물 없이 목메게 먹는 밥이다 울컥, 몸
안쪽에서 비릿한 설움 치밀어 올라오는 밥이다 피가 도는 밥이 아니라 으스스, 몸에 한기가 드는 밥이다 (이재무·시인,
1958-)
+ 밥줄
나를 묶고 있는 것은 밥줄이다 먼지 투성이 소음 투성이 공장으로 내모는 오오 이
밥줄 끊으면 자유로울까
하루도 그 어느 하루도 그냥은 밥도 국도 내놓지 않는 세상 땀 묻은 빵만이 일용할
양식이다 (구광본·시인, 1965-)
+ 밥
밥은 먹었느냐 사람에게 이처럼 따뜻한 말 또
있는가
밥에도 온기와 냉기가 있다는 것 밥은 먹었느냐 라는 말에 얼음장 풀리는 소리 팍팍한 영혼에 끓어 넘치는 흰
밥물처럼 퍼지는 훈기
배곯아 굶어죽는 사람들이 이 세상 어느 죽음보다도 가장 서럽고 처절하다는 거 나 어릴 때 밥 굶어
하늘 노랗게 가물거릴 때 알았다 오만한 권력과 완장 같은 명예도 아니고 오직 누군가의 단 한 끼 따뜻한 밥 같은 사람 되어야 한다는
거
무엇보다 이 지상에서 가장 극악무도한 것은 인두겁 쓴 강자가 약자의 밥그릇 무참히 빼앗아 먹는 것이다
먹기
위해 사는 것과 살기 위해 먹는 것은 둘 다 옳다 목숨들에게 가장 신성한 의식인 밥 먹기에 대해 누가 이렇다 할 운을 뗄
것인가
공원 한 귀퉁이, 우두커니 앉아있는 이에게도 연못가 거닐다 생각난 듯 솟구치는 청둥오리에게도 문득 새까만 눈
마주친 다람쥐에게도 나는 묻는다
오늘 밥들은 먹었느냐 (신지혜·재미 시인, 서울 출생)
+ 쌀밥
먹는 시간
경기도 여주 땅을 지나다가 쌀밥집이라는 상호를 처음 보았는데 쌀밥이라는 낯익은 어휘가 한 집의
주인으로 반듯하게 서있는 게 문득 새로워 차림표에 의젓하게 자리한 쌀밥 한 그릇 반가이 청했는데
보통의 이런저런 반찬으로
차려진 밥상의 중심에 마지막으로 올라온 쌀밥 한 그릇 한참 동안 밥그릇을 두 손으로 감싸고 있다가 입안 가득 담아 넣는 한
숟가락의 밥 사십여 년 지탱해온 내 몸의 모든 것이 때마다 떠 넣은 밥숟가락에 힘입은 것이어서 내 디뎌온 발자국
하나하나가 이 쌀 한 톨 한 톨의 힘이 아닌 것이 없어서 앞에 놓인 쌀밥 한 그릇 한 숟가락의 밥이 새삼 가슴 뜨겁게
뭉클해지는데
뿌리 끝 흔들리는 절망에 닿아서도 서로를 부축하여 굳건히 어깨를 결어온 벼들이 들판 가득 일렁이고 불어오는
바람도 넉넉히 품는 서늘한 깊이가 고단한 일상의 허기를 채우는 이 땅의 가을
입안 가득 쌀밥을 꼭꼭 씹어 삼키며
한 톨 한 톨의 쌀알들이 뜨겁게 몸을 데우는 시간 영혼의 허기도 비로소 삭아들며 푸근해지고 한 그릇의 밥 앞에서
숙연해지는 가을 한나절 생활에 지치고 발걸음 무거운 이들에게 나도 더운 김 솔솔 나는 뜨거운 밥 한 그릇 지어내고 싶다
(김은숙·시인, 충북 청주 출생)
+ 밥을 사다
밥을 사주고 싶다
벌거벗은 나무에게는
뜨거운 국밥 한 그릇 사주고 싶고 밤새 얼어붙은 시냇물에게 김 모락모락 나는 솥밥 사주고 싶고 서늘한
바람이나 차가운 달빛에게도 이제 막 끓여낸 칼국수나 짬뽕 한 그릇 건네주고 싶다
봄부터 가을까지 부지런히 몸
놀리며 농작하느라고 얼마나 허기지고 살 빠졌을까 대처럼 뼈만 앙상하게 남았으니 밥 한 그릇에 두둑하게 살
붙겠느냐마는 물만 내놓은 밥상에 죽은 꽃도 핀다는 것 아니냐
겨울이라고 모두 집안으로 거둬들이고 가지고 있는
것들 전부 입 속으로 삼켜버리고 동면 준비하느라고 바쁘시겠지만 굶고 있는 새에게 설렁탕 한 그릇 사주고 며칠
얻어먹지 못한 꽃밭이나 강에게 순대국 한 그릇 사주고 싶은 것이다
그때 배고팠을 때 밥 한 그릇같이 고맙고
절대적인 것이 어디 있었겠느냐 (김종제·교사 시인, 1960-)
+ 아름다운 식사
밥집에 가면 국과 밥
따로 먹는 시인 알고 있습니다. 정성스럽게 한 그릇의 국 다 비운 뒤 비로소 밥 먹는 시인의 식사법에서, 아름답습니다! 국은 국으로 밥은 밥으로
대접받습니다. 세상의 식사법은 국에 밥 말거나, 급하게 밥만 먹는 요란스러운 숟가락질뿐입니다. 국은 국으로 밥은 밥으로 인정하지 않고 쉽게
국밥을 만들어버리는 혼돈의 식탁은, 섞어 하나로 만드는 폭력일지도 모릅니다. 내가 아닌 우리라고 쉽게 익명이 되어버리는 이 시대의 밥상에서 나도
국밥이 아닌 국과 밥 먹고 싶습니다. 경건히 국 다 먹은 뒤 더욱 경건히 밥 먹고 싶습니다. 기분 좋지 않습니까? 국 다 먹을 때까지 밥 한
그릇 따뜻하게 기다리고 있다는 일이. (정일근·시인, 1958-)
+ 밥
밥을 잘
먹어야 건강하다
밥맛을 잃으면 살맛도 없어진다.
목구멍으로 넘기는 밥도 중요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의 밥도 중요하다.
좋은 마음을 자꾸자꾸 먹어야
좋은 사람이 되고 좋은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인생살이는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는 것을
우리는 한순간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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