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전통 문화 김정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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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김정화 | 등록일 | 16.09.22 | 조회수 | 67 |
1. 한식의 유래 한식에 대한 기록은 우리나라의 여러 세시기(歲時記)에 나타난다. 조선 후기에 간행된《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삼월조의 기록을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산소에 올라가서 제사를 올리는 풍속은 설날 아침, 한식, 단오, 추석 네 명절에 행한다. 술, 과일, 식혜, 떡, 국수, 탕, 적 등의 음식으로 제사를 드리는데 이것을 명절 하례 혹은 절사(節祀) 라 한다. 선대부터 내려오는 풍속을 쫓는 가풍에 따라서 다소간 다르지만 한식과 추석이 성행한다. 까닭에 사방 교외에는 사대부 여인들까지 줄을 지어 끊이지 않았다. 상고하면 당나라 정정칙(鄭正則)의 사향의(祠享儀)의 글에 이르기를 옛날에는 산소에서 지내는 제사에 관한 기록된 문헌이 없었다. 그런데 공자가 묘를 바라보며 때에 따라서 제사지내는 것을 채택했으므로 이른바 묘제는 이에서부터 나온 것이라고 하였다.` 이로 보아 한식은 중국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것이 신라시대에 우리나라로 전래되어 우리의 풍속에 맞게 사대명절에 속하게 되었다. 한식은 글자 자의대로 더운 음식을 피하고 찬 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속신(俗信)이 있어, 한식 또는 한식날이라 하였다. 한식의 유래에 대해 중국에서는 두 가지 설이 전해 온다. 중국 고사에 이 날은 비바람이 심하여 불을 금하고 찬밥을 먹는 습관에서 유래했다는 설과, 다른 하나는 개자추전설(介子推傳說)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중국 진(晉)나라 충신 개자추(介子推)가 간신에게 몰려서 면산(綿山)에 가서 숨어 있었는데, 진 문공(文公)이 개자추의 충성을 알고 불렀으나 나오지 않았다. 도리 없이 면산에 불을 놓았으나 개자추는 나오지 않고 불에 타서 죽고 말았다. 그 후부터 그를 애도하는 뜻에서 이 날은 불을 쓰지 않기로 하고, 찬 음식을 먹었다. 출처:문화콘텐츠닷컴(원형문화백과 한국의 24절기) 2. 한식의 종류 된장찌개 김치찌개 고등어조림 갈치조림 꽁지깻잎조림 불고기 청국장 굴회 굴무침 취나물무침 고사리 나물무침 비빔밥 콩나물국밥 멸치볶음 너비아니 떡갈비 물김치 배추김치 나박김치 총각김치 열무김치 갓김치 보쌈김치 파김치 파숙지 순무김치 찜닭 콩나물무침 곰국 된장국 고추장찌개 뼈해장국 우거지된장국 감자탕 오리탕 보신탕 사골해장국 선지해장국 돼지국밥 따로국밥 우거지 얼큰탕 순대국밥 곱창 전골 순대볶음등... 출처:네이버 한식의 우수성
1. 윷놀이
장기 장기는 각각 16개의 말을 가지고 상대방을 공격하여 승부를 내는 놀이로, 고대 중국의 전술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장기판이나 말의 구조가 간단한데도 그 속에 무궁 무진한 수가 들어 있어서, 인내와 지혜가 필요하다. '따귀 맞아 가면서 훈수한다'는 말이 있듯이, 장기는 두는 사람뿐 아니라 구경하는 사람까지 즐겁게 한다.
윷놀이의 유래
윷은 신라시대부터 민가에서 성행한 우리 고유의 민속놀이로 중국의 저포(樗浦)놀이, 몽고의 살한(撒罕)놀이, 부여의 관직명인 마가(馬加) 우가(牛加)등 관제를 본 뜬 놀이라는 3가지 설이 있다.
비석치기는 아이들이 편을 나누어 손바닥만한 납작한 돌을 비석처럼 세워두고 상대편이 이를 넘어뜨리는 놀이이다. 그런데 왜 하필 비석치기인가? 그 많은 단어중에 굳이 "비석"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게 되었을까? 그 유래를 살펴보면 참으로 민중의 불편한 심기가 놀이로 반영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자신들의 재산을 수탈하여 모은 재산으로 송덕비를 세웠으니 당연히 눈꼴사나울 수 밖에 없다. 백성들은 지나가면서 한번씩 발로 툭툭 차는 것으로 그 마음을 달래주었을 것이다. 이러한 일들이 하나의 놀이로 발전한 것이 비석치기이다. 민중의 한풀이가 놀이로 승화된 것이다. 기록에 따르면 술래잡기의 기원이 인경을 울린뒤 순경을 풀어 통행금지 위반자를 잡는 것을 흉내낸 놀이라는 기록도 있다. 또 꿩의 꼬리를 가지고 만든 제기를 가지고 논 기록이나, 나무를 둥글게 만들어 밑을 뾰족하게 한 뒤에 핑구, 요즘의 팽이 놀이에 대한 기록도 있다. 이렇듯 조선시대의 놀이들은 대부분 지금까지 그 형태가 유지되어오는 놀이가 대부분이다. 그때의 골목에서도 우리가 알고 있는 20세기 후반까지의 놀이 문화와 거의 닮은 풍경이 보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장기 장기는 각각 16개의 말을 가지고 상대방을 공격하여 승부를 내는 놀이로, 고대 중국의 전술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장기판이나 말의 구조가 간단한데도 그 속에 무궁 무진한 수가 들어 있어서, 인내와 지혜가 필요하다. '따귀 맞아 가면서 훈수한다'는 말이 있듯이, 장기는 두는 사람뿐 아니라 구경하는 사람까지 즐겁게 한다.
윷놀이의 유래
윷은 신라시대부터 민가에서 성행한 우리 고유의 민속놀이로 중국의 저포(樗浦)놀이, 몽고의 살한(撒罕)놀이, 부여의 관직명인 마가(馬加) 우가(牛加)등 관제를 본 뜬 놀이라는 3가지 설이 있다.
비석치기는 아이들이 편을 나누어 손바닥만한 납작한 돌을 비석처럼 세워두고 상대편이 이를 넘어뜨리는 놀이이다. 그런데 왜 하필 비석치기인가? 그 많은 단어중에 굳이 "비석"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게 되었을까? 그 유래를 살펴보면 참으로 민중의 불편한 심기가 놀이로 반영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자신들의 재산을 수탈하여 모은 재산으로 송덕비를 세웠으니 당연히 눈꼴사나울 수 밖에 없다. 백성들은 지나가면서 한번씩 발로 툭툭 차는 것으로 그 마음을 달래주었을 것이다. 이러한 일들이 하나의 놀이로 발전한 것이 비석치기이다. 민중의 한풀이가 놀이로 승화된 것이다. 기록에 따르면 술래잡기의 기원이 인경을 울린뒤 순경을 풀어 통행금지 위반자를 잡는 것을 흉내낸 놀이라는 기록도 있다. 또 꿩의 꼬리를 가지고 만든 제기를 가지고 논 기록이나, 나무를 둥글게 만들어 밑을 뾰족하게 한 뒤에 핑구, 요즘의 팽이 놀이에 대한 기록도 있다. 이렇듯 조선시대의 놀이들은 대부분 지금까지 그 형태가 유지되어오는 놀이가 대부분이다. 그때의 골목에서도 우리가 알고 있는 20세기 후반까지의 놀이 문화와 거의 닮은 풍경이 보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판소리의 구성요소 4가지 - 소리꾼, 창, 고수, 청중
'소리꾼' - 소리판에서소리판을이끌어가는 주체.오른손에부채를들고,창과아니리,너름새,발림을 섞어가며 소리를 한다. '창' - 판소리에서 노래로 부르는 부분을 가리킨다. 판소리는 창과 아니리를 번갈아 부른다. 창은 어떤 장면을 확대 부연하여 정서적 긴장과 감흥을 유발시키는 구실을 한다.
'고수' - 소리꾼의 소리에 장단을 맞춰주는 사람이다. 고수는 연출가인 동시에 지휘자로 북반주는 명창의 소리를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한다. 고수는 추임새를 넣어 소리꾼이 소리를 신명나게 할 수 있도록 이끈다.
'청중' - 청중과 소리꾼, 고수들 사이에 공감대가 형성됨으로 소리판이 완성된다.
단지 구성요소 4가지 만을 찾으신다면 위에 것으로 하면 되구요,
기타.. 다른것으로는.
소리- 판소리의 공연중 광대가 노래하는 것
아니리- 창이 아닌 말로써, 창 도중에 장면 변화나 정경 묘사를 하는 이야
발림 - 판소리의 공연중 광대가 몸짓으로 소리의 상황을 연출하는 것, 노젓기나, 톱으로 썰기 같은 것
추임새 - 판소리 공연중 고수(북치는 사람)가 얼쑤, 어이, 잘한다, 그렇지 등의 말로 광대의 기분을 돋구워 주는 것 가능한 부분만 설명할께욤.
우리나라 한옥은 시대별로 크게 삼국시대 양식, 고려 시대 양식, 조선 시대 양식으로 나눕니다. 삼국시대는 하앙 양식으로 하앙이라는 특이한 구조물이 있습니다. 현재 백제 재현 단지에 보시면 백재 왕궁이 모두 하앙 양식으로 지어져 있습니다. 원형은 현재 남아 있는 것은 없고 석조 모형과 문헌 만 존재 합니다. 고려시대 양식은 부석사 무량 수전과 수덕사 대웅전이라는 문화재로 남아있는 우미량 양식이 유명합니다. 또한 고려는 불교 국가였기 때문에 많은 돈이 불교 건축물을 건설하는데 사용되었고 또한 그 모양이 매우 화려하고 귀족풍입니다. 조선의 양식은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목재의 부족으로 (너무 남벌을 했기 때문에 소나무가 부족해 지기 시작합니다.) 집을 짇는데 들어가는 부재들이 고려시대에 비해 싸이즈가 작아졌고 또한 그 역할이 공학적으로 중요한 부분에 들어가는 미적인 부분 보다는 효율성을 중요시 하는 양식으로 바뀌었다는 변화가 있습니다. 조선시대에 이르러 건축물들이 다양해 졌는데.... 주심포, 다포 등 화려한 포작 양식과 민도리, 굴도리 집등 단순하면서 서민적인 양식이 그것입니다.
질문하신 지역 별 차이는 집의 구조에 따른 부분입니다. 남부 지역은 우선 여름이 길고 날씨가 뜨겁죠? 겨울엔 많이 춥지 않습니다. 따라서 남부지경의 경우 마루가 넓고 트인 일자집 모양이 많습니다. 마루는 일본과 베트남등 남쪽 나라에서 유입된 것으로 알려 져 있습니다.
중부 지역의 경우 ㄱ 자집, ㄴ 자집등 남부지역에 비해 약간 폐쇠성이 들어간 것이 특징입니다.
강원도를 비롯한 북부지역의 경우 여름이 짧고 겨울이 길고 기후가 춥습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매우 폐쇠적인 ㅁ자 집이 유명합니다. 특히 강원도의 경우 집 주변에 자주 출몰하는 호랑이, 늑대등의 맹수로 부터 소 , 돼지를 보호하기 위해 가축을 가까이 두고 키웠고 이때 문에 우사,축사가 안방과 같이 붙어있는 특징이 있습니다. 지붕의 경우 남부지역은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풀,벼 등을 이용한 초가집이 쉽게 눈에 띄이는데 비해 북부 지역 특히 강원도 지역의 집들은 너와집으로 대표되는 나무로 지붕을 만들거나 굴피집 처럼 나무의 껍질을 이용하기도 했습니다. 많은 눈의 무계를 지탱하기 위해서는 풀을 이용한 초가집 보다는 나무를 이용한 굴피집이 효과 적이었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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