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학년 3반

모두가 행복한 6학년 3반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서로 사랑하는 6학년 3반
  • 선생님 : 고민서
  • 학생수 : 남 9명 / 여 9명

윤봉길을 읽고

이름 이지운 등록일 16.08.30 조회수 48

독후감을 쓸책으로 윤봉길 의거를 6학년1학기에 배웠었고 , 더 자세히 알고 싶어 이책을 선택하였다. 윤봉길은 11살이 되던 해인 1918년 덕산 공립 보통학교에 입학했다. 그 무렵 일본은 우리나라 백성들을 더 못살게 굴었다. 일본사람인 교장선생님은 금테두른 모자를 쓰고 옆구리에 긴 칼을 차고있었다. 여기서 한가지의 사실을 알 수 있다. 교사도 칼을 차고 학생들에게 위협감을 준 것이다. 11살인 윤봉길은 학교가 끝이 나고 장터로 나갔더니 대한독립 만세 ! 대한독립 만세! ” 골목 골목에서 형과 누나 들이 쏟아져 나오며 만세를 불렀다. 그뒤로 하얀옷을 입은 할머니 할아버지 아저씨 아주머니 들이 태극기를 흔들며 지나갔다. 윤봉길은 그때 처음 태극기를 보았다. 윤봉길이 처음보는 태극기는 뭔가 코끝이 찡한 느낌이었다. 그뒤 윤봉길은 생각했다. ‘열심히 공부해서 힘을기르자. 그래서 언젠가는 일본놈들을 이 땅에서 몰아 내는 일에 앞장 서자이것이 윤봉길의거의 첫걸음 이었다. 몇 년뒤 윤봉길은 사람들 어깨 너머로 신물을 들여다 보았다. 커다란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조선 사람 이봉창, 일본왕에게 폭탄을 던졌으나 불행하게도 실패.’ 일본왕에게 폭탄을 던졌는데 폭탄이 터지지 않아 실패했다는 기사였다. 윤봉길은 가슴이 뛰었다. 마치 자기가 해야할 일을 놓친 듯한 기분이었다. 그날 밤 윤봉길은 김구를 찾아가 이봉창 열사가 했던일과 같은 계획이 있으면 자신에게 맡겨달라했다. 마침내 429일 아침이 밝았다. 윤봉길은 양복을 차려입고 머리를 매만졌다. 누가봐도 일본 사람의 차림새 였다. 그때 집 주인인 김해산이 물병과 도시라그 일본 국기를 가져왔다. 물병과 도시락은 겉모습일 뿐 , 그 속에는 폭탄이 감추어져 있었다. 윤봉길은 물병을 어깨에 메고 도시락과 일본 국기를 양손에 나눠들고 집을 나섰다.윤봉길은 훙커우 공원으로 향했다. 거리는 온통 축제 분위기로 들떠있었다. 많은 일본 사람들이 손에 손에 일본 국기를 들고 훙커우공원으로 가고 있었다. 그러나 공원에 들어간 윤봉길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미리 봐 두었던 곳에 다른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던 것이다. 윤봉길은 침착하게 이곳저곳을 살폈습니다. 알맞은 곳이 눈에 띄었다. 바로 무대 뒤쪽이었다. 재빨리 그곳으로 갔다. ‘옳지 , 여기서 라면 놈들을 산산조각낼 수 있겠다!’ 물병과 도시락을 움켜쥔 손이 부르르 떨렸다. 일본사람들은 기쁨에 들떠서 일본 국가를 부르고 일본 국기를 흔들어 댔다. “천황 폐하 만세 !” ‘이때다윤봉길은 물병 폭탄을 무대 위로 힘껏 던졌다 콰앙 쾅!” 엄청나게 큰 폭음이 훙커우 공원을 뒤흔들었다. 하지만 윤봉길은 일본 헌병들에게 그만 붙들리고 말았다. 19321219일 아침 윤봉길은 두눈을 검은 천으로 가린채 사형장에 세워졌다.“, , . 윤봉길은 붉은 피를 내뿜으며 쓰러졌다. 그때의 윤봉길의 나이 25살이었다. 100년을 두고 활활타올라도 모자랄 , 민족의 불꽃이 스러진 것이였다. 윤봉길의거는 참 대단한것같다. 11살의 아이가 어찌 그런 생각을 할수 있었을까? 13살인 나도 가끔 뜻이 이해가 안갈때도 있다. 윤봉길 의거의 용맹함이 참 부러웠다. 보통 사람 같았으면 그런 용감한 일에 뛰어들지도 못했을 것이다. 만약 용기를 내어 훙커우 공원까지 갔었더라도 만약 폭탄 던지는 일을 실행할 수 있었을까? 라는 생각도 든다.. 조국을 위해 몸을 바친 윤봉길, 자유의 씨앗을 뿌리고흙으로 돌아간 윤봉길 ... 결코 포기 못할 끈기와, 용기 리더쉽등, 우리는 윤봉길의거님을 본받아야 할게 많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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