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청남초등학교 5학년 2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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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 | 등록일 | 21.12.08 | 조회수 | 36 |
도요토미 히데요시(풍신수길)로 노부나가의 애신(愛臣)이었던 것으로 기록된다. 전국시대를 통일한 히데요시는 강력한 중앙집권체계를 구축하고자 가타나가리(칼사냥), 히토바라이(무사와 농민 등의 계급분리) 등의 개혁을 시도한다. 이들은 조선을 거쳐 중국(명)으로 건너가 인도까지를 정벌하려고 하는 등 매우 자신감 넘치는 계획을 세웠으나 이순신의 활약으로 최종적으로는 실패하게 되면서 물거품이 되고 만다. 4월 13일 20만의 군대로 조선을 침략한 일본군은 4월 28일 신립장군이 이끄는 배수진을 친 중앙군과 충주 탄금대전투에서 승리하여 파죽지세로 한양으로 올라가 5월 2일에 한양에 입성한다. 그러나 이순신(23전 23승 무패의 장군)이 옥포해전(1592.5.7.)에서 승리한 이후 한산도대첩을 통해 남해의 제해권을 확보하자 일본군은 보급로가 끊겨 곤란에 처하게 되었고 당해 12월 명의 이여송이 지원군으로서 참전하면서 육지에서도 왜군을 몰아내기 시작하였다. 권율의 행주대첩 이후 한양을 수복한 조선은 훈련도감을 설치하고 속오법을 실시하였다.14세기 중반 개국한 명은 15세기 초 영락제 때 전성기를 맞아 정화가 아프리카까지 정벌하는 대규모 해외원정을 수행하기도 했으나 그 후 급속도로 쇠퇴하여 1449년 '토목의 변(명의 정통제가 몽골과의 전쟁 도중 포로로 사로잡힘)일본군은 강화 회담을 제안했다. 하지만 강화 회담은 실패했고 일본군은 다시 침입했다(정유재란). 명에는 명의 황녀를 후비로 하자는 등 무리한 요구를 했고 결국 이 회담은 결렬되어 1597년 정유재란이 발발한다. 임진왜란의 실패를 교훈삼아 전라도 곡창지역을 확보하고자 했던 일본군은 8월 거제도 앞 칠천에서 원균이 이끄는 조선수군을 대파하면서 전쟁을 유리하게 이끈다. 그러나 백의종군한 이순신은 9월 명량에서 133대 12척의 열세를 극복하고 대승을 거두게 되고 이 때문에 다시 보급로가 끊길 것을 우려한 일본군은 충청도 직산(현재의 천안)에서 북상하지 못하고 묶이게 된다. 이에 조명연합군은 1598년 울산왜성, 순천왜성 등을 공격하지만 함락시키지는 못하며 교착상태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1598년 9월 도요토미가 일본에서 사망하자 일본군은 철수하게 되고 철수하는 일본군들을 이순신이 노량에서 대파하여 승리하면서 7년에 걸친 임진왜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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