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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1학기 과학과대회 [노벨과학에세이대회]
작성자 서민수 등록일 19.03.21 조회수 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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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노벨과학에세이대회

- 과학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 글쓰기 능력을 함양하기 위해 수행합니다.

- 노벨상 수상자들의 업적이 과학과 사회, 인류와 자연 생태계에 미친 영향을 에세이로 작성하고 평가합니다.

- 과학용어에 대한 이해정도, 업적연구의 중요서을 파악하고 서술하는 논리성, 자신만의 관점, 글의 명료성, 인용과 참고에 대한 평가를 합니다.

2. 대상 : 전교생

3. 참가 : 1인

4. 참가방법

  - 정해진 제출양식에 노벨과학에세이를 작성하고 출력하고 제출합니다.

  - 제출기한, 장소 : 4월 19일 4층교무실 서민수선생님에게

5. 에세이는 2쪽 이내로 하며 초과할시 감점합니다.

   

 

<아래는 예시입니다>

 

 

<출처>-노벨과학에세이 대회 예시문


“폴 디랙, 직관으로 자연 이치를 꿰뚫다”

박상혁 
경기과학고등학교 1학년 

과학자들은 무엇을 위해 끊임없이 실험하고 연구하는 것일까? 몇몇 사람들은 생활에 편의를 가져다주기 위해서라고 말하며, 또 다른 사람들은 열정을 쏟아 과학이라는 학문을 발전시키는 데 의의를 둔다고 말한다. 하지만 과학을 하는 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는 아름다운 자연에 대한 호기심이 아닐까 싶다. 자연의 미(美)는 이것을 연구할 열정과 인내까지 불러일으킬 정도로 매혹적이기 때문이다.

이제까지 자연이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은 자연을 끊임없이 탐구한 여러 물리학자들에 의해 밝혀져 왔다. 아이작 뉴턴(Isaac Newton, 1643~1727)은 사과가 떨어지는 것으로부터 질량이 있는 물체는 서로를 끌어당기고 있다는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했고, 제임스 맥스웰(James Clerk Maxwell, 1831~1879)은 전기와 자기를 통합한 대칭적인 방정식을 만들었으며, 알베르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879~1955)은 시공간의 곡률로써 천체들의 움직임을 설명했다.

물리학자들은 오래 전부터 자연 현상의 원리를 찾아나갔다. 그 결과, 자연의 아름다움은 자연의 다양한 특성 중 대칭성에 있다고 믿게 되었다. 이 믿음을 확고히 만든 결정적 인물이 바로 20세기 물리학을 이끈 이론물리학자 폴 아드리안 모리스 디랙(Paul Adrien Maurice Dirac, 1902~1984)이다.

폴 디랙은 1902년 영국 브리스틀에서 태어났다. 그는 프랑스어 교육을 강조하는 아버지 밑에서 자라 어려서부터 말 수가 매우 적었다고 한다. 이는 나중에 대중 앞에 나서길 꺼려하는 성격에도 영향을 준다. 디랙은 처음부터 물리를 전공하진 않았다고 한다. 수학적 재능이 있었던 그는 19세에 전기공학 학위를 마치고 2년 뒤 응용 수학으로 BA(Bachelor of Arts) 학위를 받았다. 영국의 높은 실업난으로 인해 전기공학 분야에서 일을 찾지 못한 그는 연구 장학금을 받고 케임브리지 세인트 존스 칼리지에 입학했다. 이때부터 그는 이론물리학을 처음 접한다.

이 시기의 이론물리 분야에선 이미 아인슈타인이 상대성이론을 완성하였고, 하이젠베르크(Werner Karl Heisenberg, 1901~1976)와 슈뢰딩거를 비롯한 여러 물리학자들이 양자역학의 체계를 확립하고 있었다. 이에 따라 빛의 속력에 근접할 정도로 빠르게 움직이는 소립자를 설명하기 위해서, 두 이론을 통합한 상대론적 양자역학 방정식이 요구되고 있었다.

디랙은 지금도 ‘바른 양자화(Canonical Quantization)’으로 불리는 포아송 괄호(Poisson Braket)을 이용한 양자화 방법을 출판하고 24세에 박사학위를 취득한다. 그리고 하이젠베르크나 보어를 비롯한 학자들과 교류하여 복사의 양자론에 기여하는 한편, 엔리코 페르미(Enrico Fermi, 1901~1954)와 독립적으로 전자에 적용되는 통계를 개발했다.

양자역학에 대해 끊임없이 연구하던 중, 1928년 27세의 디랙은 자신을 노벨상으로 이끄는 중요한 방정식을 유도하게 된다. 이 방정식은 그의 이름을 따라 ‘디랙방정식’이라고 불린다. 이것은 상대론적 양자역학 방정식으로 당시 물리학계가 요구하던 것과 같은 것이었다. 힘을 받지 않는 상태에 대하여 전자 등 작은 입자의 운동을 정확히 기술할 수 있었다.

그러나 곧 문제점이 발생했다. 디랙방정식을 풀었을 때 두 가지 해가 도출되었는데, 이 중 하나가 상식적으로 맞지 않았던 것이다. 한 가지 해는 전자가 스핀을 한다는 것으로, 이는 이전부터 물리학자들이 실험적으로 예측했던 사실과 잘 맞아떨어졌다.
나머지 다른 해의 결과는 음의 에너지와 관련된 것이었다. 원래 아인슈타인의 상대론적 에너지를 고려해 본다면, 질량을 가진 입자의 에너지는 mc2보다 항상 크거나 같아야 한다. 그런데 디랙방정식에서는 질량을 가진 입자의 에너지가 mc2보다 항상 크거나 같아도 되고, -mc2보다 작거나 같아도 된다는 결과가 도출되었다.

이 어처구니없는 결론을 디랙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했을까? 또, 만약 내가 그였다면 이 결론에 확신을 가질 수 있었을까? 아마 다른 물리학자들이 거부했듯이, “아, 내가 어디선가 잘못해 이런 결론을 나왔구나.”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디랙은 달랐다. 그는 자신이 만든 방정식에 확신을 가졌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방정식이 수학적으로 너무나 깔끔해서, 디랙은 음의 에너지가 존재한다는 가정을 수용했다.

그는 직관을 중시했다. 그리고 우주는 대칭적이라는 아름다움을 가진다는 직관을, 토대로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고안했다. 이렇게 나온 그의 이론은 ‘구멍이론’으로 불린다. 그는 이 음의 에너지를 가지는 입자는 모두 전자가 차지하며, 현실의 진공과 같다는 기이한 생각을 해보았다. 만약 이 입자가 에너지를 받으면 어떻게 될까? 곧 양의 에너지 상태로 올라가 전자처럼 보일 것이다. 그러면 음의 상태에 생긴 공간은 물속의 공기방울처럼, 마치 질량이 전자와 같으면서도 양전하를 띤 입자로 보이게 된다.

이때까지 전자의 전하만큼 양전하를 띠는 입자는 양성자뿐이었다. 물론 그가 생각했던 것을 다른 물리학자들은 터무니없게 생각했음은 말하지 않아도 당연할 것이다. 디랙이 예견했던 이 입자는 바로 반물질이었고, 그의 이론대로라면 반물질과 물질은 양립할 수 없게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발견되지 않을 것 같던 이 입자는 1932년 우주선을 관측하던 칼 앤더슨(Carl David Anderson, 1905~1991)에 의해 발견되었고, ‘양전자’라고 이름 붙여졌다. 또한, 주세페 오키알리니(Giuseppe Occhialini, 1907~1993) 등에 의해 양전자와 음전자간의 생성 및 소멸까지 발견되었다. 이로써 디랙의 이론은 인정받으며 승리를 거둔다. 

현재에는 양전자를 쉽게 생산할 수 있는 수준까지 기술이 발달했고 다양한 분야로도 쓰이고 있다. 의료용으로 많이 쓰이는 양전자방출단층촬영기(PET)가 대표적인 예로, 양전자를 인체의 내부의 전자와 쌍소멸이 일어나 빛이 발생하는 원리를 이용한 것이다.

이 공로로 폴 디랙은 1933년 에르빈 슈뢰딩거(Erwin Schrödinger, 1887~1961)와 같이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1) 그는 지금까지도 반물질을 예견한 위대한 물리학자로 칭송받고 있다. 그는 한 가지 나름대로의 원리를 만들었다. 

“신은 세상을 창조할 때 아름다운 수학을 이용했다.”

자연이 수학적으로 틀림없이 아름답게 기술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는 물질과 반물질의 대칭성이라는 놀라운 결과를 낳았던 것이다. 더욱이, 그의 직관이 대단한 이유는 바로 이론이 관찰, 실험을 앞서갔다는 것이다. 물론 이론이 실험을 앞서간 경우는 역사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이 반물질의 경우는 약간 다르다. 어느 정도 연구의 배경 지식이 있었던 다른 여러 연구와는 달리 새로운 입자와 물리학의 장을 열었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그는 뉴턴이나 아이슈타인보다 더 존경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만약 폴 디랙의 선행 이론이 없었다면 1932년 우연히 칼 앤더슨에 의해 발견된 양전자는 쉽게 해석될 수 없었을 것이며, 오히려 1900년대 후반의 양자전기역학과 반물질 생성 및 보존을 다루는 입자물리학 등, 현대 물리학의 발전은 상당히 늦어졌을 것이다.

직관을 중시하는 그의 생각은 후에 양자전기역학을 발전시킨 리처드 파인만(Richard Phillips Feynman, 1918~1988)에게도 영향을 미쳤다.2) 파인만은 직관적으로 물리학을 단순하게 기술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진술하기 쉬우면서도 시각화하기 쉬운 결과와 방법만을 연구했고, 경로적분이나 파인만 다이어그램과 같은 정리를 만들었다.

디랙이 물리학에 공헌한 업적은 이 방정식뿐만이 아니다. 앞에서 이야기한대로 페르미-디랙 통계를 만들어내었으며 실제로 자기 홀극이 존재하게 된다면 어떠한 성질을 만족하는지 연구하기도 하였다. 하이젠베르크의 행렬역학과 슈뢰딩거의 파동역학을 통일시켰으며3) 전자기장의 양자론 완성에도 크게 기여하였다. 아직까지도 대학원 교재로 쓰이는 『양자역학의 원리(The Principles of Quantum Mechanics)』를 저술하기도 했다.

그의 업적을 나열하면 끝이 없지만, 그 무엇보다도 나는 디랙의 직관과 결과를 믿는 확신에 주목하고 싶다. 몇몇 사람들은 직관은 단순히 운과 같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이는 과학자로서 갖추어야 할 중요한 덕목이다. 

로버트 밀리컨(Robert Andrews Milikan, 1868~1953)이 기름방울실험을 통해 전자의 기본 전하량을 측정할 때, 그는 절반 이상의 실험 데이터 값을 버렸다고 한다. 반면, 어니스트 러더퍼드(Ernest Rutherford, 1871~1937)는 적은 양의 알파 입자가 산란된 것에 주목해 원자핵이 존재함을 입증했다. 두 학자가 서로 다른 방식을 보였던 이유는 각자의 직관에 따라 나름대로 올바른 과학적인 결론을 이끌어내려 했기 때문이다. 폴 디랙도 우주에 대칭적으로 음의 에너지가 존재한다는, 아름다움에 관한 직관으로써 위대한 과학적 결론에 도달했다. 

학교에서 실험시간에 결과가 잘 나오지 않으면 예상 결론으로 조작하려는 친구들을 종종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럴 때, 자신만의 소신을 지닌 채 실험 자체에 덤벼볼 용기를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이런 관점에서 틀도 깨지고 세상을 바꿀 아이디어가 나온다는 것을 폴 디랙의 일생이 증명했듯이 말이다. 

디랙은 직관으로 자연의 이치를 꿰뚫었다. 하지만 앞으로 과학을 연구할 우리들이 디랙의 사고를 본받아나갈 때 비로소 그 자연은 진정으로 빛이 나지 않을까.





<주석>
1) 대중 앞에 나서길 꺼려하는 성격 때문에 노벨상을 거절하려고 했다는 일화도 있다.
2) 리처드 파인만은 폴 디랙을 영웅으로 여겼다.(『Genius-The life and science of Richard Feymann』)
3) 바른 양자화는 하이젠베르크의 행렬역학과 슈뢰딩거의 파동역학 사이의 연결을 포함한다.



<참고 문헌>

01. 네이버 백과사전. “디랙방정식.”(검색일 : 2011년 8월 25일), http://100.naver.com.
02. 네이버 캐스트. “반물질은 존재한다.”(검색일 : 2011년 8월 25일), http://navercast.naver.com.
03. 노벨재단. 『당신에게 노벨상을 수여합니다(노벨 물리학상)』. 이광렬·이승철 옮김. 바다출판사, 2010.
04. 위키피디아. “canonical quantization."(검색일 : 2011년 8월 25일), http://en.wikipedia.org.
05. “Paul Dirac."(검색일 : 2011년 8월 25일),.
06. 제임스 글릭. 『천재(리처드 파인만의 삶과 과학)』. 황혁기 옮김. 승산, 2006.
07. Britannica. “디랙.”(검색일 : 2011년 8월 25일), http://preview.britannic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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