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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진하 등록일 17.10.20 조회수 98

 

과거형과 미래형

3학년 박진하

요즘들어 사람들은 세상이 정말 좋아졌다고 들 했다. 고개를 바짝 들어도 끝이 보일까 말까 한 고층 아파트와 길거리에 지나다니는 로봇들이 흔했다. 로봇들은 길도 척척 알려주고, 가끔 말동무도 되어줬다. 나는 이런 인공적인 소리들을 좋아했다. 그래서 자주 눈을 감고 길을 걸었다. 그러나 평화를 깨는 소리가 가끔씩 들려왔다.

로봇, 기계는 물러가라! 우리는 맑은 하늘을 원한다!”

요즘따라 더 자주 들리는 것 같았다.

어휴, 어떻게 로봇한테 일자리를 빼앗기고 그러냐? 무능한 인간들.”

인간들은 너무 한심했다. 자기에게 불리한건 교묘하게 말을 바꿔 핑계를 댔기 때문이다. 특히 저런 인간들 말이다.

집에 오니 아빠는 또 밥을 차려놓고 날 기다리고 있었다.

또 나 기다렸어? 안 먹으니까 그냥 먼저 먹어.”

그래도 수진아, 한입이라도 먹어.”

몰라. 싫다니까.”

잔소리하는 아빠를 두고 방으로 들어왔다. 대체 몇 번째인지 모르겠다. 9시까지 스마트폰을 하다가 밖에 나가고 싶어 몰래 나왔다. 놀이터 그네를 타며 이어폰으로 노래를 듣고 있었다.

세상이 어떻게 되려나. 정말 큰일이야.”

그러니까요. 저희 외할머니 댁도 절반은 공사 시작했데요.”

이제 시골도 시골이 아니구나.”

외할머니도 부업 하시던 곳에 기계가 들어와서 이제 못하신데요.”

나랑 처지가 비슷하구나.”

어휴, 나와도 이런 소리를 듣다니 너무 짜증이 났다.

아 진짜. 저 말 몇 번 들었는지 모르겠네. 다 핑계라니까.”

순간 입을 틀어 막았다. 속마음을 뱉어 버린 것이었다. 그 사람들이 나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무서워서 집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저기 학생.”

이어폰에서 노래는 나오지 않았지만 거짓말처럼 입에서 노래가 술술 나왔다.

저기 학생?”

재차 나를 부르기 시작했다. 너무 당황스러워서 노래를 더 크게 부르기 시작했다.

학생! 핸드폰 놓고갔어.”

?”

결국 뒤를 돌았다. 아차, 완전한 오해였다. 핸드폰을 떨어뜨리고 온 것이었다. 돌아가면서 생각했다. 이어폰만 달랑거리면서 노래를 불렀다니, 너무 창피했다. 다음에는 그런 실수를 절대 하고 싶지 않다.

침대에 누웠는데 그 할머니께서 마지막에 하신 말씀이 귀에 계속 맴돌았다.

학생. 핸드폰 여기 있어. 그런데 말이야, 우리가 왜 시위를 하는 건지 한번만 알아줬으면 좋겠어. 그럼 들어가.”

에이, 할머니 쟤가 뭘 알겠어요. 어서 들어가요.”

옆에 있던 남자애도 심상치는 않았다. ‘보아하니 내 또래 같았는데 저렇게 살고 있다니, 쟤는 왜 시위를 하는건지 잘 모르겠네.’ 궁금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화상수업을 마치고 길거리로 나섰다. 그날따라 색다른 길로 가보고 싶어 좁은 골목길로 걸어들어 갔다. 거리는 쥐 죽은 듯이 조용했고, 개발을 반대하는 현수막들이 가득했다. 하지만 잔잔하게 코를 자극하는 냄새가 어딘가에서 풍겨왔다.

, 어디서 나는거지?”

둘러보니 저 끝에 찻집이 있었다. ‘가온누리라고 조그마한 간판이 있었다. 냄새에 이끌려 찻집으로 들어갔다. 이건 운명인지 우연인지 어제 뵜던 할머니께서 계셨다.

어서오세요. 어제 봤던 학생이구나. 이야기 들으러 왔어?”

그건 아니었지만 한번 들어보기나 할까 해서 대답을 했다.

학생. 우리가 왜 시위를 하는지 알아?”

아니요. 하지만 그건 좀 쓸데없어 보이기는 해요.”

왜 그렇게 보이니?”

어차피 이미 세상은 다 바뀌었어요. 되돌리긴 늦었기도 하구요.”

학생. 지금 학생 옆집에 누가 사는지 알아?”

그럼요. 근데 누구였더라?”

거봐, 이게 문제라니까. 사람들은 점점 자기 생각만 하고 있단다. 이기적으로 변하고 있는거지. 게다가 여유도 없단다.”

무슨, 그건 다 핑계에요. 다 자기 집을 빼앗기고 직장을 빼앗겼다는 걸 숨기고 과거로 돌아가자고 우기는 거잖아요.”

핑계라고? 어제도 그런 말을 하는 걸 들은 것 같은데. 그렇지 핑계일수도 있어. 하지만 우리도 핑계에 맞서는 거란다.”

시위하는 사람들이나 그러지, 저같은 사람들은 아니에요.”

아니, 인간들은 가장 큰 핑계를 대고 있어. 자신들은 지구를 안전하게 만들고 있다고 말이지.”

왜요? 지구는 안전해요. 지금 얼마나 간편하고 안전해요.”

다시 한번 잘 생각해보렴. 요즘 아이들은 시골의 맑은 하늘, 밭에서 출렁이는 곡식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알까? 엄마의 손길이 없는 밥상이 마음을 울릴 수 있을까? , 이야기가 너무 길어지구나. 그럼 가보거라.”

알겠습니다. 그럼 안녕히 계세요.”

집에 돌아가면서 곰곰이 생각을 해보았다. 요즘은 밥을 집에서 안하고 편의점이나 캡슐로 해결했다. 직접 만든 밥을 먹어본지도 오래인 것 같기는 하다. 그런데 문득 드는 생각이 있었다. ‘맞다. 아빠는 매일 밥을 직접 해놓고 나를 기다리는구나.’ 아빠는 정성들여 밥을 짓고 날 기다렸던 것이었다. 하지만 한달에 한 번 먹을까 말까 했었다. 갑자기 미안해지기도 하고 후회도 되는게 아리송 했다. ‘집에 들어가서 밥 한번 먹어볼까?’ 결심을 했다.

평소와 다를 바는 없지만 왠지 긴장이 되었다.

나 왔어.”

왔어? 밥 먹어.”

내가 아빠를 얼마나 무시했는데, 어김없이 오늘도 나를 웃으며 맞아 줬다.

. 손 씻고 올게.”

아빠는 왠일이냐는 듯 빤히 바라봤다. 식탁에 앉자 밥 위에 생선조각을 넌지시 올려주셨다.

아빠, 이거 매일 직접 하는거야?”

그럼. 우리딸 건강하려면 직접 해야지.”

맛 없기만 해봐. 히히.”

누가한건데 맛없겠어. 어서 먹어봐.”

한 술 뜨는 순간 입에서 고소한 맛이 맴도는 게, 처음 맛보는 맛이었다. 사실 예전에도 서너번 맛 본 적이 있었지만, 뭐가 바뀐건지 오늘은 정말 맛있었다.

밥이 진짜 맛있다. 뭐 넣었어?”

너무 오랜만에 먹어서 그런거겠지. 아니면 수진이가 바뀌었거나?”

이건 내가 바뀐게 틀림없다. 앞으로 밥은 꼬박꼬박 먹고, 찻집도 자주자주 가야겠다. 그리고 마음은 조금 달라진 것 같다. 앞으로는 과거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상상은 자주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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