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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과거회상)
작성자 박정은 등록일 17.10.20 조회수 116

"다빈아! 우리 숨바꼭질 하자~" 저 멀리서 숨바꼭질 하자며 달려오는 아이는 내 친구 수호다.

"싫어, 나는 숨바꼭질 안 해. 모래놀이 할 거야! 그리고, 나는 너랑 안 놀 거야.

메롱~ 수호바보!" 내 말이 끝나자 수호는 "나는 너랑 놀고 싶은데... 나랑 놀자." "시끄러워! 조용히 해! 나는 너랑 놀기 싫다니까!" 나의 큰 소리에 수호는 울먹이며 내가 밉다는 말과 함께 사라졌다.

수호가 가고 놀 사람이 없어진 나는 혼자 집으로 향하려 했고, 그 때 횡단보도 건너편에 있는 강아지에게 가려고 발을 디디면서 나는 그만 차에 치이고 말았다.

차에 치이는 그 순간, 굉장히 많은 생각이 들었고,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내가 좋아하는 수호였다.

나에게는 남들도 다 있는 엄마, 아빠가 있었지만, 나를 행복하게 해주고, 재미있게 놀아주는 엄마, 아빠는 곁에 존재하지 않았다.

항상 외로웠던 나에게 처음으로 다가와준 친구가 수호였고, 항상 어두웠던 나의 얼굴에 활기를 넣어준 친구도 수호였다.

차에 치이고 의식을 잃기 전 조금 떠 진 나의 눈에는 강아지가 도망가는 모습과 나를 친 차의 주인, 횡단보도를 건너려던 사람들이 놀라며 뛰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을 마지막으로 나는 눈이 감겨졌고, 소리를 들을 수 도, 느낌을 느낄 수 도 없었다.

 

내가 눈을 감은 지 얼마나 되었을까, 정신은 돌아왔지만 나는 눈을 뜨고 싶지 않았다.

주위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알기에, 나는 그렇게 현실에서 멀어지고 싶었다.

그 때, 어디선가 많이 익숙하지만 어색한 슬픈 목소리에 자동적으로 눈이 떠졌다.

"우리...다빈이....살려주세요, 의사선생님! 일이라는 핑계로 어린 저 아이에게 못 해준 게 너무 많은데, 다빈이가 영영 눈을 못 뜨면 나는 미안해서 어떻게 살아요..."

그 목소리의 주인은 바로 엄마였고, 나는 충격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내 말을 걸면 항상 거절 하고 나에게 관심이 없던 엄마가....나를 귀찮아하던 나쁜 엄마가 울고 있는 모습을 보자, 나에게 상처였던 모든 것들이 씻겨 내려가는 것 같았다.

내가 깨어났다는 것을 모르는 듯이 엄마는 울음을 그치지 못하셨고, 나와 눈이 마주친 의사선생님의 말씀에 그칠 수 있었다.

"정신이 드니? 다빈아?" 내가 말하기도 전에 엄마는 내가 깨어났다는 것이 믿기지가 않으신 듯 정말 내가 맞는지, 꿈이 아닌지 계속 물으셨다.

나는 엄마의 볼을 타고 내려오는 눈물을 보고 미소를 살짝 지으며, 주사가 꽂혀있는 손을 들어 닦아 주었더니 아예 내 손을 잡고 얼굴을 묻으시며 서럽게 우시는 엄마이다.

처음 보는 엄마의 모습에 당황할 겨를도 없이 병실 문이 열리며 아빠가 들어오셨다.

나를 보시자 아빠는 울음을 참으며 병실 밖으로 다시 나가버리셨고, 이에 잊고 있던 의사선생님께서는 정말 괜찮은지 나에게 재차 물으셨고, 그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괜찮다고 말씀을 드렸더니 의사선생님께서는 저녁에 다시 오겠다고 말씀하시고는 나가셨다.

몇 시간이 지나, 진정이 된 엄마, 아빠와 어떻게 된 일인지 이야기도 나누고 여태까지 관심을 써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나의 부모님의 사과도 들었다. 그리고 내가 사고를 당하고 2주가 지나서 일어났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저녁이 되자 저녁밥을 챙겨먹고, 의사선생님의 진료도 받으니 벌써 10시가 되었다

나는 약 효과 때문인지 많이 졸렸고, 그런 나를 알아채신 아빠가 얼른 자라며 재촉하셨다. 하지만, 내가 잠들면 모든 게 꿈일 것 같고, 지금 엄마, 아빠와 이야기를 하는 이 순간이 처음이고 새로워서 두렵고 무서웠다.

나의 마음속에 들어갔다 오신 것 인지 아빠께서는 계속 옆에 있을 테니 얼른 자라며

나의 손을 꽉 잡아주셨다.

오랜만에 잡아보는 아빠의 커다란 손과 오랜만에 들어보는 엄마의 잔잔한 목소리가 나를 편안하게 잠들 수 있도록 하였다.

 

"다빈아! 일어나봐" 엄마의 커다란 목소리에 의해 나는 졸린 눈을 비비며 몸을 일으켜 세웠고, 눈을 제대로 뜨자 보이는 것은 어떤 부부와 그 사이에 있는 한 아이였다.

세 사람을 보자 나는 엄마에게 누구냐고 물었고, 엄마는 당황해하며 "수호잖아! 네 친구 수호!"라는 말을 내뱉으셨다. 그러나, 내 머릿속에는 수호라는 아이는 존재하지 않았다. "엄마, 나는 저 아이를 모르겠어요. 기억이 안나요."라는 말을 하자, 수호라는 아이 옆에 있던 부부는 놀랐고, 수호는 나에게 다가왔다.

"너 정말 내가 기억이 안나...? 내가 누군지 모르겠어...? 너 나랑 결혼 약속도 했잖아!!" 라는 수호의 말에 나는 "미안한데, 나는 너를 모르겠어... 정말 미안"이라는 대답을 했다.

대답을 하자마자 수호는 밖으로 뛰쳐나갔고, 수호의 부모님으로 보이는 부부는 나중에 다시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수호의 뒤를 쫒아갔다.

세 사람이 나가고 엄마는 나에게 수호가 정말 기억나지 않느냐고 5분에 한 번씩 계속 물으셨고, 그에 나는 계속 모르겠다는 같은 말만 반복했다.

다시 오겠다던 수호네 가족들은 그 후로부터 19년이 지난 지금까지 본 적이 없었다.

 

19년 전, 9살 때의 나는 사고로 기억을 모두 잃었고, 나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내가 좋아했다던 수호라는 아이도 함께 잊어버렸다.

8년 전, 20살이 되던 나는 예전에 나의 기억을 찾기 위해 수많은 노력을 했고, 아픔을 딛고 어릴 적 나의 기억을 모두 찾아내며 수호를 그리워했다.

4년 전, 24살 대학생활을 끝마치는 대학교 졸업식을 한 후 나는 바로 백수가 되었고, 엄마에게 항상 등짝을 맞으며 잔소리를 들었다.

3년 전, 25살 부모님의 권유로 나는 선을 보게 되었고 일찍 결혼하는 것이 싫었던 나는 선 자리에 나가지 않으려고 별의 별 짓을 다했다.

그렇게 나는 청춘인 25살에 시집을 가지 않게 되었다.

2년 전, 26살 작년에 나가지 않았던 선을 올해 다시 잡아놨다는 엄마의 말에 소름이 끼쳐 도망을 가려고 했지만 엄마의 간절한 권유로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는 말과 함께 나가게 되었다. 나가자마자 보이는 사람은 바로 내가 보고싶어 하던 수호였고, 어릴 때와 똑같은 모습인 수호는 활짝 웃으며 나를 반겼다.

그 때, 수호말로는 나 빼고 수호네와 우리 부모님은 연락을 계속 해왔고, 내가 기억을 찾아 수호를 먼저 부르며 찾아줄 때까지 기다렸다고 한다. 그리고, 병원에서 나간 이후로 단 한 번도 나를 잊은 적이 없다고 했다.

1년 전, 27살 나는 결혼식을 위해 꽃단장 중이고, 옆에서 사랑스럽다는 눈빛으로 나를 보고 있는 남자는 단연 수호다.

하객들을 모두 만나고 이제 입장만 남아있다. 아빠의 손을 잡고 있는 내가 조금 떨었는지 아빠는 시집을 가서도 자주 오라며 긴장을 풀어주셨고, 손이 왜 이렇게 차냐며 더 꽉 잡아주셨다.

신부 입장이라는 소리를 듣고 아빠와 나는 발을 맞추며 수호에게 다가갔고 하객들의 축하 속에 나, 수호, 엄마, 아빠, 수호네 부모님까지 웃으면서 결혼식을 끝마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28살 현재, 결혼기념일인 오늘 내 앞에는 선물을 들고 웃고 있는 남편 수호가 무슨 생각해?”라며 다가오고 있었고, 나는 내 앞에 선 수호를 보며 옛날 생각 좀 했어.선물 고마워! 근데 나는 선물 준비 못 했는데...” 라는 말과 함께 시무룩한 표정을 짓자, 수호는 괜찮아, 앞으로도 내가 줄게! 너는 받기만 해.”라며 나와 수호는 평생을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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