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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호 청렴-영동 소식지
작성자 황간중 등록일 18.12.03 조회수 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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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안에 길이 전할 사물은 청백뿐[류관]


황해도 문화현에서 삼사판관 류안택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호는 하정입니다.

처음에는 학자가 되려 했으나, 나라가 어렵고 백성이 괴로울때 일수록 올바른 벼슬아치가 필요하다는 부친의 말을 듣고 뜻을 바꾸어 26세에 장원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랐으며, 목민관으로 황해도 봉산 군수, 예문관 대제학을 거쳐 세종 때에 청백리로 뽑히고 79세의 늦은 나이에 세종대왕이 그의 학문과 인품을 아껴 우의정에 봉하였고, 임종 시에는 세종대왕께서 친히 문무배관을 거느리고 흥인문에 나가 제사를 지냈다고 합니다.

류관의 성품을 잘 보여주는 일화를 소개해 드리면

우의정이라는 높은 벼슬을 가지고 있는데도 장마 때 천장에서 비가 줄줄 새자 우산으로 비를 막으며 부인에게 "이 우산도 없는 집에선 어찌 견디겠소." 라고 말하니, 부인이 말하기를 "우산없는 집엔 다른 준비가 있답니다." 라고 쏘아 붙이자 류관이 껄껄 웃었다고 전합니다. 그는 나라에서 받은 녹은 다리를 놓거나 길을 넓히는 일과 동네 어린이들의 먹과 붓 값으로 썼기 때문입니다. 이런 류관의 성품을 아껴 세종대왕은 종신토록 국록을 급여했고, 태종은 남몰래 그의 집 울타리를 만들어주기도 했습니다.

높은 벼슬 자리에 있으면서도 뽐내지 않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 호미를 들고 채소밭에서 김도 매고, 벌레도 잡는 등 부지런함이 몸에 배어 있었으니, 그의 소탈함과 청백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세종대왕은 류관에게 자주 음식과 물건을 보내어 그의 공을 치하했으나, 세종임금이 보내는 맛있는 음식과 귀한 재물은 하루를 넘기기 어려웠습니다. 임금께서 어찬을 내리시면 마을 사람들을 모아놓고 잔치를 열었고, 아무리 귀한 임금님의 하사품 일지라도 어려운 사람이 있으면 언제나 무엇이나 가리지 않고 내주었다고 합니다.

류관의 유훈은우리 집안에 길이 전할 사물은 오직 청백이니, 대대로 이어 끝없이 전한다.(吾家長物惟淸白 世世相傳無限人)”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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