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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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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안중근)
작성자 회남초 등록일 19.10.24 조회수 130

안중근 의사
동양평화와 대한독립에 헌신한 대한국인 안중근
(安重根 - 1879. 9. 2. ~ 1910. 3. 26. / 황해도 해주)
안중근은 1879년 9월 2월(음력 7월 16일)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났고, 아명은 응칠(應七)이다. 아버지가 천주교에 입교하면서 안중근도 아버지를 따라 세례를 받고 세례명을 도마(Thomas)로 하였다. 안중근은 할아버지에게 조선역사와 유교경전을 배우며 민족의식을 길렀다. 또 유학자이면서 근대 신문물을 수용했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개화적 사고도 지닐 수 있었다.

1905년 일제가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강탈한 을사늑약이 체결된 후 해외로 나가 국권회복의 길을 모색하던 안중근은 국내로 돌아와 애국계몽운동을 전개하였다. 서우학회에 가입한 후 삼흥학교와 돈의학교를 운영했으며, 1907년 2월 국채보상운동이 시작되자 국채보상기성회 관서지부를 조직해 적극적으로 활동하였다. 애국계몽운동을 통한 국권회복에 힘쓰던 그는 일제에 의한 광무황제 강제 퇴위와 대한제국 군대 해산 등을 보면서 국내 항일운동에 한계를 느껴 국외 독립전쟁에 참여하기로 결심하고 러시아 연해주로 망명하였다.


북간도를 거쳐 연해주에 도착한 안중근은 동의회 산하 의병부대의 우영장(右營將)을 맡아 1908년 여름 두 차례의 국내진공작전을 이끌었다. 또한 얀치헤(煙秋)에서 동지들과 동의단지회를 결성하고 조국 독립에 헌신할 것을 맹세하였다. 그러던 중 초대 통감을 지낸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가 1909년 9월 만주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 대한제국을 침략하고 동양의 평화를 깨뜨린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하기로 결심하였다. 의거 준비를 마친 안중근은 10월 26일 하얼빈역에 도착한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하였다


 

더 자세한 사항은 독립기념관 사이트( http://www.i815.or.kr/2018/scholarship/independentista.do )를 방문하시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자료출처: 독립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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