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궁

  •  일정한 거리 밖에 있는 과녁이나 표적을 겨냥하여 화살로 쏘아 맞히는 경기이다. 양궁의 뜻을 지닌 archery는 다른 여러 지역의 민족이 사용하는 활을 뜻하기도 하나, 한국 고유의 국궁(國弓), 즉 궁도(弓道:궁술)와 구별하기 위해 양궁이라 한다. 양궁은 옛 조상이 사용해 오던 국궁과 그 발상의 유래는 비슷하나 전세계적으로 그 민족의 풍토나 풍습에 따라 사용방법이나 모양에 특징을 가지며, 이를 지중해형(地中海型)·몽골형[蒙古型]·해양형(海洋型)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한국 고유의 국궁은 몽골형에서 유래되었으며, 양궁은 지중해형에서 유래되어 발전되었다. 그 뒤 1538년 무렵 궁도 애호가인 영국의 헨리(Henry) 8세가 영국 전역에 보급시켜 자체 대회를 개최하는 한편, 차츰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으로 수출하여 스포츠로서도 각광을 받았는데, 이것이 세계적으로 활성화된 것은 1930년대 이후부터이다.

     한국에서는 1959년 수도여자고등학교 체육교사 석봉근이 궁도에 관심을 보여 노년층에 많던 궁도 인구를 젊은 층에도 확대해 보려고 양궁과 대나무화살을 구입, 남산 중턱에 있는 석호정(국궁 활터)에서 연습에 열중하였다. 1962년 미 8군에서 근무하던 에로트 중령이 석호정에서 연습중인 석봉근에게 관심을 보여 함께 연습하면서부터 양궁의 싹이 트기 시작하였다.

     양궁경기는 1900년 제2회 파리올림픽에서 처음 개최되었으며, 각국의 다양한 경기방식을 하나의 국제 대회로 통합을 시도하게 되었다. 특히 파리 올림픽은 양궁이 국제적 근대 스포츠로서의 성립을 알리고 이후 양궁이 발전하는데 교량적 역할을 수행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 당시 양궁은 유럽을 중심으로 한 영국, 프랑스, 벨기에, 오스트리아, 스웨덴, 미국 등 몇몇 나라들만이 참가하는 소규모 국제대회의 성격을 면치 못하였고 1904년 미국 세인트루이스 올림픽과 1908년 영국런던대회, 그리고 1920년 벨기에 엔트워프 대회에서 채택된 후 중단되었고 52년 후인 1972년 제20회 뮌헨 올림픽에서 경기방식 통합과 규정이 정립으로 재 채택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