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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길(김지하)
작성자 임태수 등록일 05.05.20 조회수 36
서 울 길

                      김 지 하

간다
울지 마라 간다
흰 고개 검은 고개 목마른 고개 넘어
팍팍한 서울길
몸팔러 간다

언제야 돌아오리란
언제야 웃음으로 화안히
꽃피어 돌아오리란
댕기 풀 안쓰러운 약속도 없이
간다

울지 마라 간다
모질고 모진 세상에 살아도
분꽃이 잊힐까 밀 냄새가 잊힐까
사뭇 사뭇 못 잊을 것을
꿈꾸다 눈물 젖어 돌아올 것을
밤이면 별빛 따라 돌아올 것을

간다
울지 마라 간다
하늘도 시름겨운 목마른 고개 넘어
팍팍한 서울길
몸팔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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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자가 생각하는 서울은 어떤 곳인가?
  -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공간

● 구성의 분석 : 3연의 자유시
  제 1연과 3연은 변형된 수미 상관의 구조를 이루고 있다. 다만 제 1연의 3행 '흰 고개 검은 고개 목마른 고개 넘어'가 3연의 3행에서는 '하늘도 시름겨운 목마른 고개 넘어'로 바뀌어 변주되고 있을 뿐이다. 특히 각각의 1행, '간다'라는 단도직입적이면서 의지적인 표현이 강하다. 그렇다고 그 표현이 무슨 경쾌하고 강렬한, 혹은 힘찬 의미와 연결되고 있지는 않다. 울분과 슬픔을 모질게 참으며 힘들게 뿌리치는 모습이 담겨 있다.
제 1연 : (나는) 힘들고 힘든 생활의 고개를 넘어 팍팍하고 메마른 서울로 몸을 팔러 갈테니 (너는) 울지 말아라.
제 2연 : (나는) 언제 돌아오리라는, 돌아와 너와 댕기풀고 한 평생 살아가리라는 약속도 남기지 못한 채, 떠나 간다. 하지만 서울이라는 모질고 모진 세상에 살아도 분꽃이 잊히겠는가, 밀냄새가 잊히겠는가, 결코 고향을 잊지는 못할 것이다. 잊기는커녕 밤마다 꿈길을 밟아, 눈물젖어 별빛 따라 돌아올 것이다.
제 3연 : (나는) 팍팍한 서울, 몸을 팔러 간다.

● 감상
  60년대 후반부터 한국은, 3공화국의 소위 경제 개발 계획에 의해 비록 경공업 단계이긴 하지만 공업화 일변도의 절름발이 경제 구조로 급속히 재편되는 양상을 내보인다. 이 절름발이 경제 구조를 지탱하는 가장 큰 밑걸음이 노동자들의 저임금, 농민들에 대한 저곡가 정책이었음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이러한 악순환은 농촌을 급격히 황폐화시켜 수많은 농민들이 농토와 정든 고향을 버리고 도시로 도시로 몰려들게 했고, 이렇게 몰려든 도시의 값싼 노동력이 오늘날 매판 재벌의 뿌리가 되었던 것이다. 이 시는 그 배경이 바로 이촌 향도의 현장으로 설정됨으로써 70년대 민중들의 뿌리뽑힘의 과정을 의미 있게 형상화한 작품으로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시가 지닌 감응력의 핵은 '간다/ 울지 마라 간다'는 구절의 세번에 걸친 반복에 놓인다. 이 구절이 이 시의 처음과 중간과 끝에 놓여 있으면서 시를 열고 응집시키고 닫는 역할까지를 맡고 있다. 시의 화자는 아무래도 남자인 듯한데, 그것을 뒷받침해 주는 언표도 바로 이 '간다'는 구절이다. 여성적 언술로는 지나치게 단호하다. 그리고 2행의 울리 마라고 달래는 대상이 청자일 것인바, 그는 아무래도 여자인 듯하고 그 달래는 사람이 그녀와 결혼하고 싶어한다는 사실로 미뤄 화자의 성별 및 연령 정도를 짐작할 수 있는 터이다.
  한 젊은 화자의 입을 통해 단호히 발화되는 이 '간다'라는 진술은 그러나, 가고 싶지 않은 것을 어쩔 수 없는 상황 때문에 떠밀려 가야 한다는 비장함과 붙어 있다. 내 살던 고향과 거기에서의 삶들과 사랑마저도 내팽개치고, 언제 돌아오겠다는 약속 남김이 없이 서울로 가야 한다. 몸을 팔기 위해 서울로 가야만 한다는 이 진술은 그 결연한 만큼이나 상대적으로 서글프고 억울하다. 이 단호함과 비장함이 한데 맞붙어 양쪽으로 팽팽히 당기는 자리에서 이 시의 긴장감이 생겨나며 그 긴장의 구도가 시 전체에 걸쳐 세 번이나 반복되는 것이 이 시 지탱의 골격이다.
  6, 70년대로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농민들은 그들의 고향을 떠나 도시로 품팔러 왔다. 그것은 몸이나 팔고 노동이나 팔면 되는 단계를 지나 종국에는 농촌의 삶 전체를, 정신까지를 도시에 서울에 팔아온 역사였다. 그 결과 이 이농의 현상은 이제 일부 농민들이 일부 도시인들에게 품을 팔러 가는 지엽적인 문제가 아니라 온 한국인이 그들의 고향을 잃어버리는 전면적인 문제로 되고 말았다. 삶의 원형적이고 화해로운 질서로서의 고향 공간은 사라지고 획일화되고 사각화된 시멘트 문화만이 유일한 대안으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이 시는 우리들의, 이 전문명적 황폐화의 출발점을 적절하고 단호한 서글픔으로 시화하고 있는 작품인 것이다.

● 주제 : 생존을 위해 고향을 등지는 농민들의 비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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