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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의 청렴 인물-황희
작성자 백곡초 등록일 17.04.12 조회수 217
1. 청렴한 인물의 이름

우리나라의 역사속에서 청렴하게 생을 꾸려간 분은 당연히 세종 때의 명재상 황 희 정승이십니다.



2. 인물 소개하는 글

황희정승은 일인지하 만인지상인 영의정을 지내면서도 그 어떤 욕심도 갖지 않았기에 누옥과 관복

한 벌로 삶을 지내는 청렴함을 보였습니다. 지위를 누려 많은 재산을 챙기던 관료와는 달리 황희정

승은 그 누구에게도 그 어떤 뇌물을 받지 않고 오직 스스로 일한 댓가로만 살림을 꾸려 나감으로써

청렴이란 횡희정승에게 있어 꼭 지키시던 근본이었습니다, 그 청렴함 곁에는 늘 절약이 따라야 했

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황희(黃喜, 1363~1452)




황희는 공민왕 12년(1363년)에 개성에서 판강릉부사 황군서의 아들로 태어났다. 열네 살 때인 우왕 2년(1376년)에 음직으로 복안궁 녹사가 되었고, 스물한 살에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며, 곧이어 진사시에도 급제했다. 그러나 관직을 사양하고 오로지 학문에만 힘쓰다가, 창왕 원년(1389년)에 성균관 학관으로서 관직 생활을 하였다. 서른 살이 되던 해에 고려가 멸망하자 황희는 새 왕조 설립에 부정적인 다른 70여 명의 고려 유신들과 함께 두문동에 들어가 외부와 일체 연락을 끊고 고려 왕조에 대한 지조를 지키려 하였다. 결국 이성계는 두문동을 포위하여 나오기를 요구하였고, 이에 따라 두문동에 들어간 고려 유신 중 나이가 가장 어렸던 황희가 관직에 나가게 되었다. 여러 관직을 거치면서 점차 왕의 신뢰를 쌓아갔는데, 그는 중추원을 없애 병제를 일원화하는 작업을 무리없이 추진하면서 태종의 신임을 받게되었다. 이후 태종은 모든 정사를 황희와 깊이 논의하였다.

조선시대 사람으로 어린시절과 젊은 시절은 고려시대때 살았으며 나머지 시절은 조선시대때 살았음. 황희는 고려가 망하자 두문동에 들어갔다. 하지만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과 이성계의 간청으로 조선조정에 들어가게 되었다. 태종때는 태종의 신임을 받았으나 계속 충녕대군(훗날 세종)이 태자가 되는 것을 반대하여 귀양을 가게 되었다. 그런데 황희는 충녕대군이 미워서 그런게 아니라 첫째 아들인 양녕대군이 왕이 되야 혼란을 격지 않기 때문에 그랬다. 그후 세종대왕이 즉위하고 세종은 다시 황희를 불렀으며 곧 영의정이 되어 우의정 맹사성과 함께 세종을 돕는다. 황희가 청렴한이유는 항상 검소하게 살았으며 옳은 말만 하였시 때문이다. 그리고 계급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에게 친절하게 대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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